김에서 ‘플라스틱 용기’ 빼도, 괜찮아요? [굿굿즈]

입력 2022-02-19 00:06 수정 2022-02-19 13:42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하고, 꾸준히 지켜보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까. 기름을 발라 구운 조미김이 대중화된 건 1980년대 중반, 김을 작게 잘라 용기에 넣어 판매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이후 수많은 조미김 제품이 쏟아졌지만 어느 기업도 기존의 포장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용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졌다. 봉지를 뜯어 그대로 밥상에 놓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이 조미김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 없는 김’을 만든다는 건 단순히 포장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익숙한 편의를 빼앗는 일이었다. 동원F&B가 이토록 무모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에는 “그래도 해야 한다”는 직원들의 소신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고작’ 플라스틱 용기 하나 없애는 데 진심이었던 이유다.

산처럼 쌓인 김 플라스틱…‘에코패키지’ 개발의 시작
기존 '양반 들기름김' 패키지와 플라스틱 용기를 제거한 '양반 들기름김 에코패키지'를 동일한 양으로 쌓아둔 모습. 에코패키지의 부피가 확연히 작다. 서영희 기자

“생산 공장에 갔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 안에 플라스틱 트레이가 산처럼 쌓여있었어요. 그때부터 ‘저 플라스틱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9일 동원F&B 본사에서 만난 김가영 마케팅 부분 과장은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쓰고 있지만, 바꿀 수 있다면 최대한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 조미김 업계 1위 양반김 브랜드를 담당하는 그는 플라스틱 용기를 뺀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개발한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김 과장과 동료들은 ESG 경영이 등장하기 전인 2018년부터 변화를 고민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미세먼지로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환경문제를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김 과장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저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가 늘 관심사였다”며 “우리 아이가 플라스틱 용기 없는 김을 먹을 수 있다면 가정과 회사, 나아가 지구 환경에도 참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미김 시장은 1986년 200억원 규모에서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36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지난해 쓰인 플라스틱 용기만 6억3000만개에 달한다. 이중 절반 정도가 동원F&B 제품이다. 양반김의 플라스틱 용기 무게는 평균 3.8g인데, 3억개로 단순계산해도 1년간 1140t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2020년 7월 출시한 양반김 에코패키지는 용기가 아예 없다. 용기를 빼고 나니 제품의 부피는 기존 패키지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20봉지 묶음 상품 기준으로 배출되는 쓰레기는 기존 패키지가 149g, 에코패키지는 55g에 불과하다.

환경 보호라는 취지도 중요하지만 이미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을 ‘눈에 띄지 않는’ 패키지로 변경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보통 설비 투자 심의는 세 차례 진행되지만, 에코패키지는 이 심의를 여섯 번이나 거쳤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내부를 설득하는 데에 직원들은 많은 힘을 쏟았다.

김 과장은 “품질 안전성 테스트, 공장 설비 교체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패키지를 만드는데 3년 이상 걸린다”며 “2년 만에 세상에 나온 에코패키지는 ESG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 흐름, 사회 환경에 도움을 받은 제품”이라고 했다.

바삭한 식감 유지가 관건인데…제습제를 뺀 이유

김은 잘 구울수록 표면이 구불구불해지고 이 입체감을 유지해야 소비자가 바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플라스틱 용기는 유통과정에서 김이 눌리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하는 완충재였다. 게다가 한 입 크기로 자른 김은 작고 가벼워서 용기에 담아야 흩날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용기가 없어도 같은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에코패키지를 연구하는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과제였다. 이영은 동원F&B 식품과학연구원 대리는 “2년간 포장지 샘플만 300여개 만들었다”며 “포장 규격이 정해진 뒤에도 1년 정도 공장에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양반김 에코패키지는 포장지 전면에 레이저커팅선이 들어간 게 특징이다. 포장지를 쉽게 펼칠 수 있어 별도의 그릇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개봉 과정에서 김이 찢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것이다. 미세하게 구멍을 뚫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라 포장지 속 김의 품질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디자인이 확정된 뒤에도 설비를 맞추고, 공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는지 테스트하고, 일주일 간격으로 맛을 보면서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있었다. 김 포장은 85% 이상 자동화로 이뤄지는데, 용기가 없어지자 실리카겔(제습제)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포장지 이음매에 끼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실리카겔을 빼고 유통기한을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였다.

이 대리는 “공장 실험은 모든 라인이 멈춘 저녁에만 가능해서 설비 담당자들이 퇴근하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며 “실험이 반복되면서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여러 담당자들이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도왔다”고 전했다.

확 줄어든 제품 크기…그래도 ‘가치 소비’ 믿었다

‘크고 푸짐해 보여야 한다’는 식품 포장재 상식을 깨버린 에코패키지는 출시 첫 달 매출이 5000만원에 그쳤다. 양이 적어 보인다는 인식이 강해 입점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은 유통 활로를 온라인에서 찾았다. 부피가 작고 가벼울수록 배달이 편리하다는 점을 어필했다. ‘플라스틱 없는 김’을 한번 경험해보면 고정 소비층이 생길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 에코패키지의 온라인 재구매율은 60% 이상으로, 판매처마다 ‘쓰레기가 적어서 만족스럽다’는 후기가 가득하다. 이제는 대형마트에서 에코패키지 매대를 별도로 마련할 만큼 오프라인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따라오고 있다.


에코패키지 출시 이후 올해 1월까지 동원F&B가 절감한 플라스틱 양은 60t. 동원샘물 500㎖ 페트병 기준 428만개를 아낀 것과 같은 효과다. 제품 크기가 작아진 덕분에 운반하는 종이박스 양도 11t이나 줄었다.

‘플라스틱 없는 김’은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가 늘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내보이는 상품이 아니기에 오로지 소비자들의 판단을 믿는 수밖에 없다. 동원F&B는 에코패키지 설비 비용을 이익으로 환수하는 데 최소 4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과장은 “기업이 어떤 도전을 할 수 있는 동력은 소비자에게서 나온다”며 “저희가 씨를 뿌렸다면 일구는 것은 소비자와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이 쓰면 무조건 친환경일까? “포장재 기술 더 발전해야”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개발한 김가영 동원F&B 마케팅부분 과장과 이영은 식품과학연구원 대리가 기존 양반김 패키지와 에코패키지를 비교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영희 기자

동원F&B는 양반김 에코패키지를 출시한 이후에도 ‘과대포장’이라는 일부 환경단체의 지적을 받았다. 에코패키지는 현재 20개 묶음 제품으로만 생산되는데, 묶음용 포장지에 비닐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과장은 종이 역시 한정된 자원이고, 무조건 친환경적인 소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묶음 포장에 종이박스를 쓰려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한다”며 “펄프를 이용해 상자를 만들고 운반하는 데 드는 탄소발자국, 수작업으로 포장할 때 소비되는 사람의 탄소발자국 등을 계산했을 때 현재로선 최소한의 비닐을 최소한의 규격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식품 포장재는 먹거리의 안전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포장재 개발이 무척 까다로운 분야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식품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 줄이기’와 ‘재활용’에만 초점을 맞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아직까지 비닐보다 산소와 습기 등을 차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소재가 없다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다.

이 대리는 “현재 기술이나 소재로는 한계가 있다”며 “포장재 연구는 다 같이 노력해야 하고 더 발전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런 변화의 속도를 앞당기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더 정교한 정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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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없는 조미김, 왜 2년이나 걸렸을까?
☞https://youtu.be/toh6SR79l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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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