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전에 실패하면 너무 아쉬워요. 마치 화장실 갔는데 손을 안 씻고 나온 듯한, 집을 막 나왔는데 마스크를 안 쓰고 나온 듯한 아쉬운 느낌!”
“경기를 보면서 명칭, 바퀴 수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음식점에 갔을 때 요리사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떻게 조리했는지 몇 도에 고기를 구웠는지 안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냥 맛있으면 된 거예요”
“내가 아무리 눈을 사랑해도 슬로프와는 멀리서 눈인사만 하는 게 좋습니다. 심판들은 손을 대는 걸 허용하지 않아요. 선수의 한 손이 닿으면 ‘으응~’ 두 손이 닿으면 ‘으음?’ 엉덩이까지 닿으면 ‘으으응~’ 상체가 닿으면 ‘음!’ 해요”
“저 회전이 얼마나 어렵냐면 오른발잡이인데 왼발로 월드컵 결승전에서 페널티킥 찬 그런 느낌이거든요!”
“경기를 보면서 명칭, 바퀴 수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음식점에 갔을 때 요리사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떻게 조리했는지 몇 도에 고기를 구웠는지 안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냥 맛있으면 된 거예요”
“내가 아무리 눈을 사랑해도 슬로프와는 멀리서 눈인사만 하는 게 좋습니다. 심판들은 손을 대는 걸 허용하지 않아요. 선수의 한 손이 닿으면 ‘으응~’ 두 손이 닿으면 ‘으음?’ 엉덩이까지 닿으면 ‘으으응~’ 상체가 닿으면 ‘음!’ 해요”
“저 회전이 얼마나 어렵냐면 오른발잡이인데 왼발로 월드컵 결승전에서 페널티킥 찬 그런 느낌이거든요!”
선수에 대한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와 선을 넘지 않는 드립, 일반인 눈높이에 맞는 친절한 해설. 우리나라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지만 ‘꿀잼’ 해설 때문에 본다고 할 정도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경기는 배우 박재민의 해설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박재민 KBS 해설위원의 방송을 모아둔 KBS의 유튜브 콘텐츠는 조회수 260만을 훌쩍 넘기며 웬만한 한류 드라마보다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박재민이 AI처럼 내뱉는 무한 정보는 때론 시청자들을 웃기면서도 금세 두 눈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선수들의 취미 생활과 징크스를 줄줄 꿰고 있는가 하면 마지막 회전을 아깝게 실패한 선수에게는 ‘화장실 갔다가 손을 안 씻고 나온 느낌’이라며 함께 아쉬워했다. 동메달을 목에 건 엄마 선수의 경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경력 단절 어머니들도 할 수 있다’면서 용기를 북돋웠다. 전신 골절과 내장 파열의 부상을 딛고 다시 출전한 선수에게는 ‘그 도전 정신을 전 세계가 보고 있다’며 응원을 보냈다.
무너질 것 같지만 반드시 그 한계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인간의 무한한 도전 정신. 박재민은 이런 올림픽 정신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1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유쾌한 해설로 유명해졌지만 “웃기려고 노력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를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수 TMI 해설로 ‘걸어 다니는 검색 엔진’이란 별명을 얻었다.
“올림픽을 5일 정도 앞두고 선수 명단이 공개된다. 총 250명 선수 프로필을 보기 쉽게 알파벳 순서로 정리하고 그들 SNS에 들어가서 첫 게시물부터 마지막 게시물까지 다 살펴본다. 그래도 또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인스타그램 DM을 보내 물어본다. 구글링도 해서 인터뷰 기사도 다 참고하고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정리하면 A4 용지 500페이지 정도가 나온다. 개막하고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정리했다.”
-외국어로 검색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심지어 영어가 아닌 경우가 절반이다. 유럽권 선수들은 영어 말고 독어나 불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구글 번역기 도움을 많이 받는데 긁어서 붙여넣기가 안 되는 것은 각각 타이핑을 해서 번역해야 한다. 이렇게 작업하면 출전하는 선수들이 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처럼 여겨진다. 누가 암에 걸렸다든지 누가 아빠가 됐다든지 얼굴만 보면 다 생각이 난다.”
-중국 선수 경기 때 ‘멍’을 외친 해설이 인기다.
“경기 중 중국 선수가 나왔는데 마스크에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다. 검색을 서둘러 해봤는데 조사한 내용에 반려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중국 선수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안 하고 웨이보를 해서 한국에서 그들의 SNS에 접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정보를 많이 찾지 못했다. 저도 반려견을 키워봤지만 강아지의 대답은 항상 ‘멍’이었다. 그 선수 반려견도 그렇게 응원할 것이란 생각에 정말 진지하게 했던 애드리브였다. 그러자 옆 캐스터분이 경쟁하듯 ‘멍멍’을 외쳤다.”
-강습도 해설처럼 재밌게 하는 스타일인가.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서 대학생 때 굉장히 많이 했다. 일단 아무리 가르쳐도 본인이 터득을 못 하면 실력은 제자리다. 타는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슬로프의 난이도에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알아서 타라고 한다. 완만한 슬로프에서 썰매를 타도 좋고 앉아서 가도 좋으니 그렇게 20번만 반복하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 본인 스스로 알아서 깨우치는 순간이 온다. 그다음부터 자세를 알려드린다. 들판에 풀어놓고 걷는 법을 터득하면 뛰는 법을 알려드리는 식이다.”
-인생 신조와 비슷한 것 같다.
“맞다. 배우, MC, 비보이, 스노보드 선수, 심판, 교수까지. 살면서 해왔던 여러 분야를 돌아보면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무모하게 뛰어들었고, 걸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전력 질주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다.”
-해설로만 알려지는 게 섭섭하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맡은 일에 1순위, 2순위를 두지 않는다. 배우도 해설도 똑같이 중요하다.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인기나 지명도는 제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가 먼저 박재민 하면 해설이라고 떠올려 준다면 그게 선물이다.”
-최근에도 배우 이순재와 ‘리어왕’ 작품을 했다.
“맞다. 작품은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인기가 정체돼 있다면 내가 배우로서의 역량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저는 계속 배우로서 노력할 것이고 꾸준히 훈련하면서 100을 내놓을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모든 분이 100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받아주는 분이 10을 가져가도 아쉬움은 없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100을 받아주시지 않을까 한다.”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도 국가도 아닌 ‘인간’이라고 했다.
“저는 맹목적으로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전율을 느끼거나 감동하는 공통적인 순간은 숭고한 희생과 단합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볼 때다. 이 모든 것이 녹아 있는 것이 스포츠다. 인간은 항상 한계를 만났을 때 그걸 이겨내면서 역사를 이룩해 왔고 스포츠는 그런 도전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힘든 상황에서 올림픽을 보면서 이런 가치들을 모두가 느꼈으면 했다.”
-2022년 새로운 도전을 앞둔 분들에게 보내고 싶은 응원은.
“예전에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갔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벽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설령 두렵더라도 티를 내지 말라. 왜냐하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뛰기 직전까지 무서워서 손톱을 깨물고 다리도 덜덜 떨었는데 막상 뛰어보니 별것 아니더라. 도전이 힘든 이유는 그 과정보다 시작할 때의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그렇게 무서웠던 코로나도 극복이 되고 있다. 여러분도 무서워도 무섭지 않은 척 도전해보시라. 그러면 2022년에는 우리나라에 5000만개의 새로운 도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