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던 경북 안동의 고택이 이른바 ‘MZ세대’에게 최고의 치유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연중 만실로 운영되는 곳도 생겼다.
팬데믹 속에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관광지’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20∼30대 여성들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일반 여행지의 경우 재방문 사이클이 비교적 큰 편이지만, 치유 관광은 한 번 와서 마음에 들면 치료 받듯 자주 찾는 것이 특징이다.
첩첩산중에 위치해 TV도 없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없지만, 나와 소중한 동반자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며 일상의 시름을 내려놓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MZ세대의 특징인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남기기에 적합한 뷰를 가지고 있고, 대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특히 인기다.
안동에서는 지례예술촌과 농암종택, 하회마을 옥연정사가 대표적인 치유 관광지로 꼽힌다.
1988년 우리나라 고택과 한옥 체험 시대를 가장 먼저 연 지례예술촌은 최근 들어 전국적 명성을 다시 얻고 있다.
안동시에 따르면 지례예술촌은 지난해의 경우 연초에 1년 간 예약 만실을 기록했고 올해도 벌써 예약율 80%를 넘겼다. 임하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인기 있는 방은 100% 예약이 끝났고 1년 반을 기다려 숙박하는 젊은 층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MZ세대 욕구를 정확히 간파한 결과다.
고무신을 신고 이동하고 냉장고와 화장실은 호실 별로 정해 놓은 칸에 공용으로 써야 하는 불편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정문이 최고의 포토존 역할을 하고 물 안개가 피어오르는 오전 9시 30분쯤 집주인이 직접 촬영을 돕는다.
낙동강 상류인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한 농암종택도 MZ세대가 선망하는 웰니스 관광지다.
농암 선생의 어부단가 중 “굽어보니 천길 파란 물, 돌아보니 겹겹 푸른 산”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곳은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강각·애일당 등 3곳으로 구분돼 있고, 기호에 따라 애일당 등 독채를 얻어 16세기 조선으로 돌아간 기분도 만끽할 수 있다. 의자에 앉아 낙동강을 조망하며 사색과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인생샷까지 건질 수 있다.
농암종택 종부의 손을 통해 대대로 빚어 온 가양주 ‘일엽편주’는 최근 애주가들에게 인기다. 감미료 없이 쌀과 물, 누룩으로만 빚어낸 전통주로 농암선생의 ‘어부가’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울 미슐랭 2스타인 유명 식당과 대형 백화점 한 곳을 통해 판매되면서 서울에서 마니아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회마을 옥연정사는 환상적 풍광 속에 올바른 정신을 담고자 했던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밴 곳으로 MZ세대들에게 포착됐다.
하회마을 건너 부용대 아래 자리 잡아 유유히 휘감아 나가는 낙동강 물길을 조망할 수 있다. 솔 숲의 향기와 깎아지른 절벽 등 최고의 치유 장소로 여건을 갖췄다. 하회마을을 건너다 볼 수 있는 낮 풍광뿐 아니라 낙동 강변을 바라보는 소나무와 은모래를 뿌려 놓은 듯한 밤하늘의 별 등 도시의 시름을 털어내기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고택이 MZ세대에 인기를 얻는 것은 네플릭스 ‘킹덤’ 등 사극을 통해 한국의 모자 ‘갓’이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에 외국인들이 열광하면서 직접 체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안동시에서 한옥 체험업을 운영 중인 곳은 하회마을, 오천군자리, 임청각, 치암고택 등 117곳에 이른다.
시는 고택 인기에 힘입어 고택 산업 전문화를 위해 올해 1억5000만원을 들여 고택 매니저 육성 및 위탁 운영 사업을 전개하고 고택 체험 프로그램 운영도 지원할 계획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기성세대에게 가난하고 힘들어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였다면, 빛바랜 사진 속 과거로 들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 MZ세대”라며 “고택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치유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