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편 알지만…” 휠체어 시위 진우씨 동행 취재기

입력 2022-02-17 17:08 수정 2022-02-17 17:31
전동휠체어에 이동권 보장 팻말을 걸어 둔 유진우씨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전동차에서 시위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신용일 기자

‘제16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예정돼있던 16일 오전 5시.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가진 장애인단체 활동가 유진우(27)씨가 살고 있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원룸에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결지는 7시30분 서울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지하철 소요 시간만 따지면 20분이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유씨는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다.

외출 준비도 만만치 않다. 3평(9.9㎡)쯤 되는 좁은 집안에선 휠체어를 탈 수 없어 양팔의 힘으로 온몸의 무게를 버텨 집안을 돌아다녀야 한다. 혼자 씻고 옷을 찾아 입는 데만 족히 1시간이 걸린다. 굽은 다리에 바지를 끼워 넣고 후드티를 입는 데에만 5분이 걸렸다. 유씨는 “화장실을 한 번 가려고 해도 턱이 높아 매번 무릎을 찧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무릎 염증을 달고 사는 그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위에 나서는 건 오늘보단 내일이 좀 나아지길 하는 바람에서라고 했다. 지난 3일 처음으로 시위에 나선 유씨는 8차례 지하철 시위에 참석했다. 단 한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장애인의 권리를 이제는 되찾자는 생각에서였다.

앞서 ‘국제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인 권리를 지원하는 예산을 늘릴 것을 요구하며 처음 지하철 시위를 했다. 같은 달 20일 시위에선 휠체어 바퀴를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틈에 끼워 전동차 문이 닫히지 못하게 하는 물리력 행사도 했다. “현행 예산을 유지한다”는 정부 관계자의 방침을 듣고는 바로 이튿날인 지난 3일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아침 지하철 시위를 해 오고 있다.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열차에 탑승해 출근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휠체어에 몸을 싣고 집을 나선 시각은 오전 6시40분. 길목 중간중간에서 행인이나 주차된 차량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곡예 통행을 할 수 밖에 없다. 험난한 이동 끝에 우이신설선 화계역 1번 출구가 보였다. 하지만 유씨는 건널목을 한 번 더 건너 2번출구로 향했다. “2번 출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곧장 하행선 개찰구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휠체어로는 역사에 들어가는 출입문을 여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떼 팔을 뻗어 문을 열다가 몸에 중심을 잃고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기자가 문을 잡았다. 유씨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지만 혼자일 땐 자주 문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그는 화계역에서 어르신들과 나란히 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한 대를 보낸 뒤에야 탈 수 있었다.

이 역사는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진 편이라고 했다. 서울 일대에는 휠체어로는 아예 이용이 불가능한 지하철역도 적지 않다. 유씨는 “명동역에는 엘리베이터도 리프트도 없어 회현역에서 내려 20분을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탄 유씨는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환승해 50분만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했다. 이날 이동권 보장 시위는 장애인 3명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시작해 전동차에 탑승과 하차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1시간30분가량 이어졌다. 전동차 문이 열리면 속도를 낮춘 휠체어가 천천히 한 대씩 연달아 전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열차가 출발하는 데 평소보다 적게는 1~2분, 길게는 5분 안팎 지연됐다. 전장연은 이번 릴레이 시위를 통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 1역 2동선(1개 역당 엘리베이터 2대)”을 요구하고 있다.

지하철 시위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과 불편함을 모르는 건 아니라고 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현장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은 날선 반응을 쏟아냈다. 전날엔 사무실 앞에 한 청년이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유씨에게 “너 시위하던 놈 맞지? 팔까지 부러뜨려줄까 XX야?”라며 욕을 했다. 유씨는 “혼자 다니기가 무섭다”면서도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욕이라도 먹으면서 관심을 가져주는 게 낫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날도 불만과 항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한 승객이 “정도껏 해라. 이걸 매일 하고 있냐”며 고성을 외쳤다. “며칠째 똑같은 얘기 듣고 있으니 지겹다”는 불만도 나온다. 또 다른 승객이 “왜 우리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며 “이런 방식이 맞느냐”고 항의하자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청와대도 국회도 다 갔다 왔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방법을 같이 고민해 달라”라고 읍소했다. 지난 14일에는 ‘지하철 시위에 대해 엄하게 형사처벌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시위가 끝난 오전 9시30분. 박 대표는 “혐오 공격까지 당하고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시위에 참여하자”며 참가자들을 다독였다. 유씨는 “(시위가) 좀처럼 익숙해지지는 않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에도 유씨는 “한번쯤은 우리의 고민과 어려움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