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군 대잠 헬기가 초저공 비행으로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대만이 긴장하고 있다. 대만에선 서방이 우크라이나 정세 대응에 분주한 틈을 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17일 대만 연합보 등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전날 중국의 KA-28 대잠 헬기와 윈(Y)-8 전자정찰기, 윈-8 원거리 전자교란기 등 군용기 3대가 대만 서남부 ADIZ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연합보는 KA-28이 오전 9시 14분쯤 해수면 30m 높이에서 초저공 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KA-28 대잠 헬기는 러시아 해군이 운용 중인 KA-27 기종의 수출형으로 중국이 1996년 구매 계약한 구축함을 들여올 때 함께 인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헬기 부대는 최근 들어 해안 및 연안 도서 상륙작전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 국가정책연구기금회 제중 연구원은 중국군이 무력 침공 시 헬기로 해안 방어선을 우회해 대만 본섬에 기습 상륙하거나 외곽 도서를 장악하는 작전을 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군이 헬기를 이용한 공중 기동 작전을 염두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동남부 연안의 비행장 확충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계속 불거지자 대만 총통부는 지난 12일 “대만해협 정세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만군은 우크라이나 정세와 대만해협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각종 위협에 대한 대비 태세 강도를 높일 것이라며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만 내 분위기와 달리 중국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대만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을 줄여야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전쟁은 대만과 남중국해는 물론이고 무기 경쟁에서 중국에 큰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국제 환경이 더욱 복잡해져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계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결론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관영 매체는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점으로 지목한 2월 16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미국의 파렴치함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고 비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고 우크라이나도 정세가 심각하지 않다고 했음에도 미국 등 서방은 전쟁이 곧 일어날 것처럼 선전하고 심지어 시점까지 예측했다”며 “이번 소동은 국제정치에서 보기 드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월 16일은 지났고 이것은 역사의 거울이 되어 미국을 비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