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변호사 살해 공모 피고 ‘무죄’… 재판부 “법률적 무죄” 묘한 여운

입력 2022-02-17 15:43 수정 2022-02-17 16:00

23년전 제주에서 발생한 미제 피살사건을 자신이 교사했다며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제보했다 살해 혐의로 기소된 50대 전 폭력조직원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장찬수)는 17일 살인(공동정범) 혐의로 기소된 김모(56)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방송 제작진을 협박한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피고인 진술 외에 별다른 추가 증거가 없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상당 부분은 단지 가능성과 추정 만으로 이뤄졌다”며 “피고인에 대한 살인 혐의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지역 폭력조직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인 김씨는 1999년 불상자의 지시를 받고 같은 해 11월 5일 새벽 제주시 삼도2동 북초등학교 인근에서 이승용 변호사(44)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공범과 사건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씨가 직접 범행을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숨진 조직원 손모(2014년 사망)씨와 범행 방법을 상의하고 피해자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하는 등 범행 설계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판단해 살인죄의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40대 변호사의 피살은 당시 제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경찰은 인력을 총동원해 수사에 나섰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고 결국 제주 대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20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김씨가 이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서다.

김씨는 방송에서 당시 조직 두목 백모(2008년 사망)씨의 살해 지시를 받고 조직원 손씨에게 시켜 살해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범행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려 보여주고 이 변호사의 이동 동선과 골목 보안등이 꺼진 정황까지 자세히 묘사했다.

방송 직후 경찰은 김씨가 단순 제보자가 아니라고 판단, 재수사를 시작해 같은 해 8월 캄보디아에 있던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당시 경찰은 해외생활 중 돈이 떨어진 김씨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를 겨냥해 사건 내용을 제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출입국 기록 분석 결과 공소시효 만료 전 김씨가 여러 차례 국외를 오가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된 기간이 남은 것이 확인됐다.

당초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김씨를 살인죄의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해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이 리플리증후군이라며 방송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재판장은 판결을 마친 뒤 재판정을 나가며 “(살인 혐의에 대한 판결은)법률적인 판단에 따른 무죄”라며 “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핵심 피고인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