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피해자 박해옥(사진)할머니가 투병 끝에 16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미쓰비시중공업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5명 중 생존자는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등 2명만 남게 됐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만 14세 나이로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됐다.
고인은 당시 일본인 교장의 계속된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당시 교장은 교사였던 언니를 들먹이면서 일본행을 압박했다. 고인은 생전 “자칫하면 언니 신상에 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부모가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지만 교장은 “그런 부모가 경찰에 잡혀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고인은 일본에서 굶주림을 견디며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을 하다 해방 후 귀국했다.
고인은 시민단체 도움으로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내고 10여년에 걸쳐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6년만인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본과 미쓰비시는 3년여가 지나도록 손해배상은 커녕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광주에서 투병해 오던 고인은 2019년 가을 자녀들이 있는 전주로 옮겨 왔다가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해왔다. 빈소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18일 발인해 전주 인근 호정공원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