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 카밀라 발리예바(16)는 도핑 규정 위반 의혹에서 할아버지의 약을 핑계로 삼았지만, 전문가들은 샘플에서 검출된 농도를 근거로 고의적 투약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도핑방지위원회(USADA)의 트래비스 타이거트 위원장은 17일 자국 뉴스채널 CNN과의 인터뷰에서 “발리예바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경기력 향상 물질을 복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발리예바의 샘플에서 검출된 트리메타지딘의 농도는 1㎖당 2.1ng으로 분석됐다. 이는 다른 선수의 샘플과 비교해 200배가량 많은 양”이라고 지적했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채집된 도핑 샘플에서 금지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로, 흥분 효과를 일으킨다. WADA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발리예바의 샘플 검사 결과는 제출일로부터 6주를 넘긴 지난 8일에야 러시아도핑방지위원회(RUSADA)로 통보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지난 4일에서 나흘이나 지났고, 발리예바가 피겨 팀이벤트 금메달을 확정한 지난 7일로부터 하루 뒤의 일이다.
당초 RUSADA는 발리예바에게 잠정적으로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발리예바의 이의 제기를 곧바로 수용해 자격 정지 처분을 철회하고 올림픽 출전을 용인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RUSADA의 이 조치를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하지만 CAS는 지난 14일 긴급 청문회에서 발리예바의 도핑 위반과 관련한 판단 없이 경기 출전 여부만 결정했다. 발리예바가 올림픽 기간 중 도핑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도핑 양성 통보도 늦어 자신을 방어할 시간이 부족했던 점을 출전 허용의 사유로 들었다. 이로 인해 발리예바는 이튿날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 출전했다.
발리예바는 CAS 긴급 청문회에서 할아버지의 심장치료제 탓이라고 주장했다. 할아버지와 컵을 나눠 쓰면서 심장치료제 성분이 발리예바의 샘플에서 검출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발리예바 샘플에서 트리메타지딘 외에도 금지약물로 지정되지 않은 하이폭센과 엘카르니틴도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타이거트 위원장은 “금지되지 않은 약물 2종을 함께 사용한 건 지구력을 높이고 피로를 줄이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1㎖당 2.1ng가 검출된 트리메타지딘 농도에 대해 “매일 정량을 복용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군가가 발리예바에게 약물을 복용하도록 가르치거나 지도하고 이끈 것 같다. 그들(발리예바와 지도자)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며 “겨우 15세(미국 기준 연령)인 소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