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32)의 금메달을 보고 꿈을 키운 소녀들은 이제 한국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성장해 생애 첫 올림픽 순위를 결정할 은반 위에 오른다. 유영(18)과 김예림(19·이상 수리고)이 한국 피겨의 사상 세 번째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유영과 김예림은 17일 오후 7시(한국시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다. 지난 15일 쇼트프로그램,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획득한 각각의 점수를 합산한 최종 점수로 순위가 결정된다. 메달의 주인공도 이날 가려진다.
유영은 쇼트프로그램에서 70.34점으로 6위, 김예림은 67.78점으로 9위에 올랐다. 모두 ‘톱10’에 진입한 만큼 프리스케이팅 점수에 따라 순위를 메달권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 피겨의 올림픽 입상권 성적은 남·여 싱글을 통틀어 김연아의 2010 밴쿠버 대회 금메달, 2014 소치 대회 은메달이 전부다.
한국 남자 싱글의 최고 성적은 지난 10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경기 일정을 끝낸 차준환의 5위(최종 점수 282.38점)다. 김연아의 소치 은메달 이후 8년 만에 남·여 싱글을 통틀어 최고 성적이기도 하다.
김연아의 밴쿠버 금메달 당시 유영은 만 6세, 김예림은 만 7세였다. 당시 초등학교로 진학하지도 않았던 이들은 은반 위에서 일찌감치 가능성을 확인하고 선수로 육성된 ‘김연아 키즈’다. 지금은 김연아의 모교인 경기도 군포 수리고에 재학하고 있다. 2003년 1월 23일생으로 만 19세를 넘긴 김예림은 올림픽을 마치면 단국대로 진학할 예정이다.
메달권에 더 가까이 있는 건 유영이다. 시상대를 불과 3계단 앞에 두고 있다. 유영의 쇼트프로그램 점수는 자신의 공인 최고점(78.22점)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한국 선수의 올림픽 여자 싱글 기록에선 김연아(2010년 78.50점·2014년 74.92점)에 이어 사상 3번째로 높다.
유영은 프리스케이팅에서 다시 한 번 트리플 악셀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피겨가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기술이다. 앞을 보고 뛰어 3바퀴 반을 회전한 뒤 정확히 착지하면 기본 점수 8점에 가점으로 1.5~2점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금·은메달을 차지했던 김연아도 함부로 시도하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난도 높은 기술이다.
유영은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지만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착지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고, 무결점 연기로 경기를 마치면 순위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쇼트프로그램을 1위로 통과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소속 카밀라 발리예바(16)는 도핑 규정 위반에 따라 빙상장 안팎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복잡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아 심리적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 도핑 논란, 놓치면 기량 논란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는 지난 15일 “발리예바가 메달권에 진입해도 시상식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IOC는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위반과 관련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 신청을 제기했지만 올림픽 출전을 용인한 긴급 청문회 결과에 따라 ‘발리예바의 입상 시 시상식 취소’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예고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