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개연성이 가장 높은 날로 이날을 지목하며 정보를 공개했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을 ‘단결의 날’로 선포하며 국민 단합을 촉구했다. 러시아 국영 언론은 ‘침공 없는 날’ ‘공격하지 않은 날’이라며 서방을 조롱했다.
일촉즉발의 전운 상태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는 점에서 서방의 정보전은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가디언은 “미국과 영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습 전략을 막으려고 이례적으로 정보를 공개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으려 했다”고 군사 전문가를 인용해 분석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 차관보를 지낸 데릭 촐렛은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작전 능력을 방해하기 위해 러시아가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을 사전 경고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근무했던 존 사이퍼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이 정보는 미국이나 영국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푸틴을 위한 정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기밀 정보를 공개해 푸틴 대통령의 전략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방이 정보 활용에 더욱 정통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안젤라 스텐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과 영국이 정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할지 등을 러시아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꽤 놀랐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정보 공개가) 푸틴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재고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정보공개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붕괴와 탈레반의 점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미 행정부의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러시아는 서방이 긴장 고조의 책임이 있다고 거듭 비판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6일 침공설에 대해 “자신들의 관측이 실행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서방의 히스테리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인내를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 채널 계정에 “(서방 언론은) 향후 1년 동안 러시아의 침략 일정을 공개해 달라. 휴가 계획을 잡고 싶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서방 정보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긴장이 고조된 상태로 장기화할 경우 피해도 문제다. 우크라이나 여당인 ‘국민의 종’ 측은 “(서방의) 히스테리로 매달 20억~3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한다. 환율이 미쳐서 우리는 해외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가디언은 “(서방의) 전술은 단기적인 위기일 때만 효과가 있다”며 “푸틴이 원하는 게 침공이 아니라 장기적 위기 분위기 조성이라면 미국과 영국의 위협 확대가 그의 목표에 부합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날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평가했다. CNN은 “러시아가 벨라루스 지역에 전술 교량을 새로 건설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이틀간 새로 촬영된 위성 이미지로 이를 확인했다고 한다. 전술 교량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4마일(6.4㎞) 거리에 있다.
CNN은 “벨라루스에서 키예프로 진격이 용이하다. 러시아가 잠재적 침공에 앞서 준비하고 있는 지원 기반 시설의 일환”이라며 “러시아는 다리, 야전 병원 등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그들의 병력 축소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지금이라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가짜 깃발 작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격받은 것처럼 자작해 침공 구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키 대변인은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있었다’는 러시아 주장이 ‘가짜 깃발 작전’의 하나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이를 포함해)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가짜 깃발과 구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러시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에 사용하려고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아직 러시아가 긴장 완화 조치를 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러시아군은 전투태세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을 방문한다. 블링컨 장관은 19일 예정된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도 참석한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지도자들과 대책을 논의 중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