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범 ‘진지한 반성’ 어떻게 잴까… 법원은 고민중

입력 2022-02-16 18:19

아동학대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논의한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진지한 반성’ 문제를 놓고 오랜 시간 토론이 이뤄졌다고 한다. 범죄자의 반성은 그간 처벌에서의 참작 요소로 작용했지만, “내심이나 선언에 불과한 것을 양형에서 고려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요구도 거센 실정이었다.

양형위가 찾은 방안은 진지한 반성을 정의하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 인정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결국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정의가 마련됐다.

양형위가 고심 끝에 정의 규정을 만들었지만 사회적인 우려는 여전한 편이다. 지난 14일 양형위 자문위원 회의에서도 진지한 반성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며, 함부로 인정할 경우 자칫 법원의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법정에서 형을 선고하는 법관들도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단할지 고민이 깊은 편이다. 전·현직 법관들은 명문 구체화의 실익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지적했고, 법관의 판단을 도울 만한 보다 효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현직 법관은 16일 “추상적인 개념을 조금 명확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의 의미”라며 “결국 법관이 촘촘히 다 심리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진지한 반성의 요건을 여러 요건들로 나눠 정의한다 한들 현실적으로는 결국 또 다시 법관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법관들은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 등을 감안해 “책임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진지한 반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을 양형의 이유로 설명해 왔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신설된 정의 규정도 추상적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반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인자로 참작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진지한 반성이란 개념을 아무리 구체화한다 하더라도 마치 숫자를 입력해 결과를 얻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말이었다. 이 변호사는 “판사들은 법정에서 직접 보고 느낀 태도로 판단한다”고 했다.

오히려 명확한 도움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반면교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의 반성 정도를 잘못 판단한 판례를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법의 한 판사는 “추상적 개념에 대한 법관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법원 차원에서 학술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진지한 반성이 양형 감경인자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반성문을 대필하는 업체도 생겨났고 국회에서는 ‘반성문 감형 꼼수 근절법’도 발의된 상태다. 진지한 반성은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아닌 피해자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한 검사는 “진지한 반성은 제출한 반성문의 양으로 말해지는 게 아니라, 피해자 측의 태도가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