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초반 핵심 부동산 정책 중 하나였던 도시 재생 사업은 양날의 검이다. 잘 된다면 독보적인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낙후된 환경만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나 문재인정부는 개발보단 도시 재생에 중점을 뒀지만 임대차 3법과 코로나 유동성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자 결국 재개발·재건축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성수동은 도시 재생 난맥상 속에서 나 홀로 성공담을 만들어낸 곳이다. 붉은 벽돌이 즐비한 아틀리에길에는 젊은 층이 몰리고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인근에 들어섰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동, 나아가 성동구의 이미지는 이제 강남에 견주어볼 만 하다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며 “일자리를 비롯해 서울시 최고 수준의 성장을 보인다. 경제적 기반과 문화적 기반이 모두 발전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그를 16일 성동구청 청사에서 만났다.
성수동 붉은 벽돌 거리에는 세계적인 커피 체인 블루보틀의 국내 1호점이 2019년 들어섰다. 붉은 벽돌 건물에 푸른 병 상징이 매달린 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정 구청장은 성수동 도시 재생 사업의 성공 비결에 대해 “천편일률적 도시 재생은 의미가 없다. 동네 특성을 살리는 도시 재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수동의 경우 특색은 살리되 리모델링이나 건물 신축을 틀어막지 않았다. 오히려 리모델링과 신축 시 인센티브를 얹어줬다. 그는 “상징과 핵심은 살리되 나머지 보완 작업은 막으면 안 된다. 안 좋은 집은 새집을 짓게 해야 한다”며 “민간이 스스로 개선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구청은 인프라 개선 작업에 몰두했다. 정 구청장은 “도시 재생에서 가장 힘든 게 주차장 문제”라며 “우리는 성수동 일대 아파트 신축 계획을 백지화하는 대신 도로와 주차장, 환경 개선 사업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특히 ‘성동구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 및 지원 조례’를 제정, 최대 4000만원까지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이 지역 건물의 70% 이상이 붉은 벽돌로 이뤄진 배경이다. 그 사이사이 젊은 층에 인기를 끄는 공방과 커피숍 등 핫 플레이스가 몰려들었다. 낡은 동네가 뜨면 그다음에 찾아오는 악재가 젠트리피케이션(주민 내몰림 현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도로 틀어막았다.
정 구청장은 “인센티브 정책 시행 전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진입을 막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책을 먼저 시행했다”며 “대기업이 못 들어오니 고만고만한 명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주와 임차인을 대상으로 ‘이곳을 명소로 만들겠다. 그러니 적정 임대료 이상을 받지 말라’는 협약을 맺었다”며 “65% 이상이 이 협약을 체결했다”고 부연했다.
그 결과 임대료 상승률은 낮고 가게의 매출은 올랐다고 한다. 집주인은? 임대료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대신 건물값이 상승했다. 정 구청장은 “상권이 살면 내 재산 가치(건물값)가 올라가는 걸 집주인이 깨달으니 임대료를 크게 올리지 않는다”며 “장사가 잘되니까 성수동 인근 지역까지 덩달아 같이 뜨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동네 주민들은 ‘이스트 성수동’ ‘웨스트 성수동’ 식으로 나눠 부르기 시작했다. 정 구청장은 “한국의 브루클린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젊은이가 많이 찾으니 그다음으로 기업들이 이주해오는 데 큰 탄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성동구에는 SM엔터테인먼트, 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이 입주한 데 이어 중견기업의 입주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강남에서도, 구로에서도 기업들이 넘어온다. 성동구 이미지가 이제 강남에 견주어 살만하다고 변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MZ세대에게는 직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매우 중요한데, 그 부분을 성동구가 만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맞춰 성동구는 기업 이전 시 재생정책과 인센티브 정책, 세금 감면 정책, 용적률 완화정책 등을 패키지로 도입했다. 정 구청장은 “2018년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이 서울시 자치구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성동구는 이제 도시 재생 2기로 유럽식 도시 재생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 구청장은 “도시 재생 시 모든 건물의 디자인을 다 다르게 만들도록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지역도 있다. 연예인들이 이사 오기 시작했다”며 “큰 시장을 낀 용답동은 시장 중심으로 도시 재생을 진행한다. 사근동은 마을 호텔 개념이다. 전통을 살리고, 지향하는 바를 다각화하려 한다. 그래야 주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적 기반에 더해 성동구의 상승세를 이끈 건 교통 인프라 혁신이다. 정 구청장은 “성동구는 지리적 위치상 서울 북동부(베드타운)의 수많은 사람을 강남과 연결하는 요충지”라며 “가능성이 0%였던 GTX-C 노선의 왕십리역 정차에 총력전을 편 이유”라고 말했다.
재선 구청장인 그는 2018년 당선 직후부터 휴대전화 번호를 모든 구민에게 공개했다. 초반에는 며칠 만에 3000여 건의 민원 문자가 쏟아졌다. 이걸 일일이 직원들에게 확인한 뒤 직접 답변했다. 지금도 하루 평균 4~5건의 문자가 온다. 외부 주민들도 이젠 연락을 한다. “코로나에 확진됐는데 담당 구청에서 연락이 없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돼요?” 같은 식이다. 정 구청장은 “외부 주민이라도 절차를 알아봐 알려주고 있다”며 “보도블럭 깨진 사진부터 여러 가지 좋은 제안이 직접 오니까 구정에 반영할 수 있다. 주민과 굉장한 신뢰를 쌓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당연히 ‘죽을 맛’이다. 정 구청장은 “기초 지자체의 존재 이유는 결국 생활 밀착형 서비스다. 작지만 가까이 있는 행정이 진행돼야 한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런 일 하나하나가 구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라며 “‘우리 일 아닙니다’하고 떠넘기는 대신 경찰, 교육청에 절차를 문의해 구민에게 설명해드리도록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정 구청장은 남은 임기를 맞는 각오를 묻자 “믿을 수 있는 구청, 주민 마음속에 있는 구청을 만들고 싶었는데 대체로 잘해온 것 같다”며 “주민이 힘들 때, 어려울 때 찾는 구청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