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예바는 15일 공개된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며칠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여자 싱글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눈물을 보이면서도 “(올림픽은) 극복해야 할 무대인 것 같다”며 “러시아를 대표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발리예바 측이 청문회에서 “협심증 치료제가 검출된 것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심장약을 복용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잔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체내에 잘못 들어간 것”이라 해명했다고 전했다.
사뭇 비장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발리예바를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여론에 민감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놓고 ‘발리예바 패싱’을 요청했고, 이에 국제빙상연맹(ISU)은 “2021 ISU 특별 규정 싱글 및 페어 스케이팅/아이스댄스 40조 A.1항에 따라 발리예바가 쇼트프로그램 상위 24위 안에 들 경우 17일 여자 프리스케이팅에 1위부터 25위까지 25명을 진출시킨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핑 위반 선수 때문에 다른 한명이 억울하게 프리 출전권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발리예바를 사실상 ‘논외’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다.
IOC도 발리예바가 여자 싱글에서 메달권에 들 경우 올림픽 기간에는 꽃다발 시상식과 메달 시상식 모두 열지 않을 방침이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판결에 따라 출전은 허용했지만,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종 결론 전까지는 수상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러시아 정부 주도의 조직적 도핑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데니스 오스왈드 IOC 위원은 브리핑에서 “과거 러시아의 체계화 된 도핑 시도가 있었지만 그런 상황까진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앞서 발리예바의 개인전 출전 허용 소식이 전해지자 피겨스케이팅계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피겨 레전드 타라 리핀스키는 트위터에서 “나이나 검사 결과의 타이밍에 상관없이 이 결정은 우리 스포츠계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평창 올림픽 페어 금메달리스트인 캐나다의 메건 더하멜은 “불법 약물 사용이 상관없다고 하는데 누가 여자 싱글 경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냐”며 “2022년 2월 14일은 올림픽 정신이 죽은 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애슐리 와그너, 나가수 미라이 등 피겨 스타들도 공개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피겨여왕 김연아도 인스타그램에 검은 배경사진과 함께 “도핑 위반 선수는 경기에 출전해선 안 된다.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영어로 적었다. 선수 시절 수많은 논란과 불이익을 겪으면서도 의견 표명을 자제했던 김연아로선 이례적이다. 많은 외신들이 김연아의 작심발언을 인용해 CAS 결정을 비판했다. 특히 일본 언론은 “4시간 만에 15만 개의 ‘좋아요’가 눌리고, 댓글이 6000건을 넘어섰다”며 크게 보도했고, 해당 뉴스에도 1000건이 넘는 동조 댓글이 달렸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