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화장실 이용자 피해 확인 안돼도 배상해야”

입력 2022-02-15 16:48
국민일보DB

불법촬영이 발생한 여자화장실을 이용했다면 피해 사실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34단독 김동진 부장판사는 KBS 직원들이 공채 출신 프리랜서 개그맨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앞서 박씨는 서울 영등포구 KBS 연구동 여자화장실에 불법 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후 같은해 9월 KBS 여성 직원 일부는 사생활 등이 침해됐다며 박씨에게 손해배상금 300만원씩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박씨가 카메라로 불법촬영을 한 기간 동안 해당 화장실을 이용했다.

박씨 측은 “원고들이 해당 유죄 판결문의 피해자란에 기재되어 있지 않아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만한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가 직장 내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한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박씨가 원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비록 수사기관에서 확보한 피고의 사진 파일에는 원고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진·영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원고들이 가장 내밀한 사적 공간인 여성화장실 내에서 여러 생리작용을 할 때 피고가 설치한 몰래카메라로 인해 프라이버시권 침해의 구체적 위험에 상당 정도 노출됐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엄격한 증명의 원칙이 적용되는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에서의 소송상 주장사실 및 이에 대한 근거로서의 증거 채용은 형사재판보다 다소 완화돼 좀 더 유연하게 인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2018년 KBS 연구동 화장실에서 칸막이 위로 손을 들어 올려 피해자가 용변을 보는 모습을 촬영하는 등 총 32회에 걸쳐 피해자를 촬영하거나 촬영을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며 2심 재판부도 지난해 2월 원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박씨와 검찰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2021년 2월 확정됐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