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점을 날짜까지 적시해 공개하고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관영 매체가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군사 배치를 강화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4일 우크라이나 위기가 여러 방면에서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유럽연합(EU) 관계를 악화시켜 미군의 유럽 주둔을 정당화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자본 이탈을 가속화해 인플레이션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창룽 인민대 국제대학원 부원장은 글로벌타임스에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현 상황에서 러시아가 침공할 필요는 없다”며 “그러나 미국은 지난 몇 달간 매우 비현실적인 정보를 대대적으로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하이둥 중국외교학원 교수도 “러시아는 나토에 위협을 가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러시아로서는 군사적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공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또 미국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중·러 사이 틈을 벌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맞서 같은 처지인 러시아와 밀월을 과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크라이나와도 가깝다.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두 나라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16일 침공설’이 확산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 대사관이 자국민에게 철수를 권고하지 않은 것도 두 나라와의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탈레반과 관계를 유지하며 끝까지 상황을 지켜본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영국,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들의 철수를 권고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번 주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미국이 공개한 침공 날짜가 16일이고, 러시아가 침공 시점을 결정하는 데 변수로 거론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일 폐막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과 맞닿은 벨라루스에서 벌이고 있는 합동 군사훈련도 20일에 마무리된다. 러시아는 합동훈련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북쪽에 군사 자원을 대거 배치해 긴장 수위를 높였다. 관련 국가들의 외교적 노력도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중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0일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가 옳은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도 중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며 러시아 압박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