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상처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분노와 집착으로 견뎌보지만 상실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럽다. 15년 전 사랑했던 로리를 잃은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숲 속 오두막으로 숨어버렸다.
그가 곁에 두는 건 돼지 브랜디뿐이다. 롭은 브랜디가 찾는 송로버섯을 캐내 식재료 공급업자 아미르(알렉스 울프)에게 납품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밤 트럭을 몰고 온 사람들이 브랜디를 납치해 가고, 롭은 아미르와 함께 돼지를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롭의 정체와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드러나는 건 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돼지를 찾는 그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괜찮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롭은 조금씩 깨닫는다. 나 스스로를 위해 언젠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행복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평론가와 대중의 칭찬, 투자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얽매여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요리는 포기해버린 셰프 데릭에게 롭은 말한다.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자네는 점점 더 없어지지. 자네는 그들을 위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자네를 보지도 못해. 자네조차도 보지를 않으니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아.”
영화는 상처를 끌어안고 고통을 느껴 본 경험이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상실을 마주하는 태도는 다르지만 등장 인물들은 서로 연민을 느낀다. 롭의 공허함과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들을 진정성 있게 표현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압권이다. 그의 묵직한 아우라가 러닝타임 92분을 꽉 채운다.
최근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몇 번의 흥행 실패 이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나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연기하지 마’라는 생각이 뇌리에 꽂힐 때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라도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으면 젊은 영화인들이 날 다시 발견해줄 것이라 믿었다”고 털어놨다.
다양한 요리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출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세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요리의 이름으로 각 장의 제목을 달았다. 모든 걸 포기한 지금의 모습도, 행복했던 시절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과정도 모두 요리를 통해 보여준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포틀랜드의 대자연은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영화는 연출과 각본을 맡은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해 전미 비평가위원회(NBR) 최우수 데뷔 작품상, 라스베가스 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시카고 인디 비평가협회 각본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31관왕을 차지했다. 영국 가디언 선정 ‘2021 최고의 미국 영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인 롭을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신스틸러 역할을 한 돼지 브랜디는 전미 비평가협회(NSFC) 동물 연기상을 수상했다. 로튼 토마토 지수 97%, 개봉은 오는 23일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