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율이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위중증화율이 낮아지고 경증 호흡기질환으로 토착화되는 과정이 빨라질 수 있다는 의학계 가설이 국내 연구진의 수리 모델링으로 입증됐다.
다만 연령이나 기저질환 유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위중증률을 수학 모델에서 고려하지 않은 제한점이 있으며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 대상 적용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바이러스 전파율이 높아지는 경우 환자 수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이 인구의 80% 이상 충분히 이뤄지고 위중증 환자 관리 의료체계가 갖춰진 후 방역정책 완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및 기초과학연구원 소속의 수학자 및 의학자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수학 모델 연구를 통해 ‘높은 바이러스 전파율은 궁극적으로 코로나19 위중증화 비율을 낮춘다’는 역설적인 연구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연구에는 KAIST 수리과학과 김재경 교수 및 홍혁표 석박사통합과정,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노지윤 교수, KAIST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기초과학연구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바이러스 면역 연구센터장) 등이 참여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오미크론은 기존 델타 변이에 비해 전파력이 2~3배 강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미크론의 유행이 오히려 코로나19의 경증 호흡기질환으로의 토착화(주기적 풍토병, 즉 엔데믹)를 앞당겨 팬데믹 종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대책을 완화하고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공동 연구팀은 ‘바이러스 전파율이 변화하면 코로나19 토착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수학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 면역반응을, 짧게 유지되는 중화항체 면역반응과 오래 유지되는 T세포 면역반응으로 나눠 수학 모델에 적용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택했다. 또 돌파감염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지만, 돌파감염 후 회복되면 면역반응이 다시 증강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백신 접종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바이러스 전파율이 높아지면 일시적으로는 코로나19 환자 수가 증가하지만 궁극적으로 코로나19 위중증화 비율이 낮아지면서 위중증 환자 수는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코로나19가 경증 호흡기질환으로 토착화되는 과정이 오히려 빨라질 수 있다는 역설적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이 가정한 바이러스 전파율이 높아지는 상황은 실제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나 오미크론 등 전파가 잘 되는 변이의 출현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오미크론 자체의 낮은 위중증 성질은 배제하고 높은 전파율이 일으키는 결과를 예측한 것으로써 코로나 토착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연구팀은 단, 연령이나 기저질환 유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위중증률을 수학 모델에서 고려하지 않은 제한점을 이야기하며, 특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이번 연구결과를 적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바이러스 전파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코로나 환자 수가 너무 많아지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도 있으므로, 이런 점을 고려해 연구결과를 신중하게 해석,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따라서 향후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으로 다시 전환할 때는 무엇보다도 위중증 환자를 수용할 병상 확보 등 의료체계의 정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경 교수와 홍혁표 대학원생은 “코로나19 팬데믹 같이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수학 모델을 잘 활용함으로써 인간의 직관으로는 유추하기 어려운 역설적인 연구결과를 얻었다”며 앞으로도 의학 연구에서 수학 모델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지윤 교수와 신의철 교수는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고 코로나 환자 수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 무조건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11일 의학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