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극, 군사 침공, 쿠데타, 친러 정부’…러시아 침공 시나리오

입력 2022-02-14 07:09 수정 2022-02-14 08:39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면서 러시아의 침공 시나리오에 대한 서방 분석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 정부 발표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①군사 행동 빌미를 위한 자작극 ‘가짜 깃발’ 작전, ②미사일과 폭탄을 동원한 국경 침공, ③첩보 요원을 활용한 쿠데타 작전 등으로 요약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CNN 등에 출연해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이전 러시아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규모 군사 행동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특히 러시아 침공이 미사일과 폭탄 공격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그는 “(폭격은) 군대가 목표한 만큼 정확하지 않아, 무고한 민간인이 살해될 수 있다”며 “그런 다음 러시아 지상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맹공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도 민간인이 십자포화에 갇힐 수 있다며 미국인이 우크라이나를 즉시 떠날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의 동부(도네츠크·루한스크)와 북부(벨라루스), 남부(크림반도) 등 국경 세 곳을 포위하고 있다. CNN은 특히 러시아가 자신에 우호적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군사력을 증강해 침공 거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CNN은 러시아 스몰렌스크주 옐냐 지역에 배치했던 탱크와 포병대 및 장비들이 최근 국경 인근으로 더 가까이 이동한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막서 테크놀러지 스티븐 우드 이사는 “탱크와 자주포, 기타 지원차량 등 상당수가 북동쪽 거점에서 이동했고, 다른 장갑차도 중앙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막서 테크놀러지가 지난달 말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러시아는 크림반도 심페로폴 북쪽에 550여 개 막사와 군용 차량 배치를 완료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병력이다. 막서 테크놀러지는 크림반도 북서부 해안에 도착한 장갑차와 러시아 군함도 발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0일 백악관 긴급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가짜 깃발 작전’을 기획하고 있다는 첩보가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먼저 공격을 받은 것처럼 조작한 비디오를 제작해 침공 구실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도 이날 “(침공을 위한) 적극적 계획이 있음을 나타내는 정보”라며 “미국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도 이를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러시아가 먼저 군사 목표물을 공격한 뒤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기타 주요 도시를 포위하고, 이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구 소련 KGB의 후신) 공작원이 친(親) 러시아 지도부를 설치하려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1단계는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것처럼 미사일, 폭탄 등의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침공 작전이 이뤄지고, 이후 2단계 작전으로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침투 시나리오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영국은 FSB 첩보 기관이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임무를 받았다고 믿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정치인 5명으로 구성된 그룹이 쿠데타에 가담하기 위해 모집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영국 외무부는 지난달 “러시아 정보요원이 침공계획의 일환으로 여러 명의 우크라이나 전직 정치인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친러 꼭두각시 정부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빌트도 이달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친크렘린 의회를 구성하고,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들을 소집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러시아는 이 같은 시나리오를 모두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강하게 부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 두 정상 간의 전화 통화는 올해 들어서만 공식적으로 세 번째다.

백악관은 통화 후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미국 약속을 재확인했다”며 “미국은 동맹 및 파트너와 함께 러시아 공격에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외교와 억지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CNN과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려 했다”고 말했다.

CNN은 “우크라이나가 첨단 무기 등 추가적 군사 지원과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빨리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지만, 긍정적 대답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주 라이베리아에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취소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긴장을 낮추거나 외교적 방법에 전념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옳은 방향으로 가는 신호는 분명 아니다”며 “(상황을) 낙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