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70여만원을 받으며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년차 직원 A씨(31)는 연 10% 수준 이율의 청년희망적금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기대를 품었지만 가입 대상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좌절했다. 정부가 A씨의 소득이 적정 기준(월 264만9080원)을 넘어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씨는 “먹고 살기 편하다는 생각을 하루도 해본 적이 없는데 느닷없이 청년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니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서울 강남구 부모님 자택에 거주 중인 B씨(25)는 이 적금에 들 수 있다. 주택 가액만 30억원에 육박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전혀 없지만, 별도의 자산 상한선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B씨는 아직 이렇다 할 소득이 없지만 부모님의 지원 덕에 최대한도까지 적금을 납입하고 저축장려액을 챙길 예정이다.
오는 21일 금융위원회가 출시하는 청년희망적금이 연일 불만에 휩싸이고 있다. 금융위는 적금 가입 대상으로 연소득 3600만원 미만의 만19~34세 청년을 지목했는데, 가입 기준 가운데 연 소득이 가장 불만을 사는 대목이다.
연 소득 최대 기준에 해당하는 3600만원에서 4대보험, 근로소득세 등을 제하면 실제 근로자가 손에 쥐는 돈은 월 264만9080원 남짓이다. 월급이 270만원만 돼도 청년희망적금 신청이 불가능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이 월 273만4000원으로 나타났다. 즉 평균 수준의 급여만 받아도 청년복지 대상에서 탈락한다는 뜻이다.
청년들은 정부가 ‘청년 복지’ 명분을 내세워 생색을 내면서도 정작 가입 기준은 지나치게 까다롭게 설정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정부는 자산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기준도 연 소득 3600만원으로 하향 설정했다. ‘애매한’ 소득 수준의 청년들은 세금만 꼬박꼬박 납부하면서도 정작 청년복지 혜택은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처럼 가입 대상자의 급여 수준에 상당한 제약을 내건 반면, 정작 실질적인 경제 수준을 나타내는 자산 기준은 조건에서 빠뜨리며 ‘금수저 특혜’ 가능성을 남겨놨다. 국세청을 통해 소득을 증명하기만 하면 가입이 가능한 만큼, 단기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는 ‘부잣집 대학생’도 월 10% 수준의 이자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다.
청년복지정책의 수혜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정부는 청년층에게 월세 20만원을 지급하는 현금성 지원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가 비슷한 논란에 휘말려 홍역을 치렀다. 당시 지원 대상 기준에 가구 자산 등을 넣지 않은 탓에 ‘금수저 배제’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었는데, 같은 일이 또 반복된 것이다.
과거 ‘장병내일준비적금’과 같이 청년 자산 형성이라는 본래 목적이 퇴색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병의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출시된 이 상품은 출시 초기 다수 은행에서 복수 가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대 월 10만원대 수준이었던 당시 병사 월급으로는 사실상 유의미한 저축이 불가능했다. 반면 ‘금수저 병사’들은 자신의 명의로 다수 적금 계좌를 튼 다음 부모님이 대신 납부해주는 방식으로 이자를 챙겼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