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친(親)트럼프’ 인증… 여전히 건재한 트럼프

입력 2022-02-13 08:36 수정 2022-02-13 10:26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을 장악했다.” 공화당 소속 랜던 브라운 하원의원은 12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그가 재선에 나오는 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선사기 주장과 1·6 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반(反)트럼프’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앞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지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틀렸다”고 직격했다. 공화당 일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1·6 의회 난입 사태를 “합법적으로 인증된 선거 이후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막으려는 폭력적 반란”이라고 비판했다.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공화당 유력 인사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 반대편에 섰다.

미 언론은 공화당의 분열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아직 확고한 상태여서 당장 분위기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많다.

‘친(親) 트럼프 인증’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낸시 메이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은 지난 10일 뉴욕의 트럼프 타워 앞에서 “나는 2016년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운동을 위해 일한 가장 초기의 지지자”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해 트위터로 공개했다. 그녀는 영상에서 “나는 트럼프 당선을 위해 전국 7개 주에서 일했다” “트럼프 덕분에 미국은 일자리를 되찾았고, 안전해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강해졌다” 등의 낯 뜨거운 칭송을 쏟아냈다.

미 언론은 이를 두고 “트럼프의 은혜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국민의 대표가 당 지지자를 감동하게 하려는 특이한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불과 하루 전 그녀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발언과 태도가 파괴적이고, 공화당을 전혀 대표하지 않는 사람” “정말 끔찍한 후보” 등의 비난을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그녀의 경쟁 상대이자 자신의 열성 지지자인 케이티 애링턴을 지지했다. 메이스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비난받자 곧바로 뉴욕으로 달려가 ‘친 트럼프’ 인증을 시도한 셈이다.

메이스 의원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었다. 지난해 1·6 의회 폭동 이후 진행된 트럼프 탄핵투표에 반대표를 던졌고, 공화당 내 대표적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하원의원의 의원총회 의장직 박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메이스 의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 눈 밖에 난 건 1·6 의회 폭동 직후 언론 인터뷰 때문이다. 그녀는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의회난입을 ‘사람들이 의회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사건’으로 묘사하고 “트럼프의 모든 유산이 사라졌다”고 비판했었다.

CNN은 “불행히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녀를 용서하거나 잊은 적이 없다. 트럼프 타워 밖에서 비디오를 촬영하더라도 다시 트럼프 폴더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을 나타내는 단면이다. 공화당 우세지역의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역시 높다. 중간 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 승리하려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척져서는 안 되는 셈이다. 브라운 의원은 이를 두고 “공화당이 극우 비주류에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략 먹혔나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사기’ 주장을 비난하고 있지만, 여론은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CNN은 최근 여론조사(지난 1월 10일부터 2월 6일 성인 1527명 대상)에서 ‘선거가 국민 뜻을 반영하고 있다고 얼마나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4%만 신뢰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선거를 ‘거의’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6%였다. ‘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은 17%로,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33%)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CNN이 지난해 1·6 의회 폭동 직후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땐 긍정 응답이 59%로 부정 응답(40%)을 19% 포인트 앞섰다. 1년 만에 선거 신뢰에 대한 여론이 뒤집힌 셈이다. 지난해 여름(8월 3~9월 7일) 조사에서는 긍정 응답과 부정 응답이 각각 48%, 52%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정 선거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공화당원 사이에서의 선거 불신 여론은 지난해 75%, 올해 74%로 변화가 거의 없다. 반면 민주당원 사이에서 선거 불신 여론은 지난해 9%에서 올해 32%까지 무려 23% 포인트나 급증했다. 중도층 사이에서도 같은 의견이 35%에서 48%로 13% 포인트 늘었다. 민주당원 사이에서 공정한 선거에 대한 확신은 68%에 그쳤고, 무소속은 41%에 불과했다.

CNN은 “13개월 만의 놀라운 반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열렬하게 지지하지 않는 그룹들도 미국의 선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불행한 일이지만 트럼프의 선거 관련 거짓말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도했다.

1·6사태 책임론도 힘이 떨어지고 있다. 퓨 리서치센터는 최근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 의회 폭동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43%라고 밝혔다. 지난해 1월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땐 52%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책임론’이 9% 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23~24% 수준으로 변화가 없었다. 반면 ‘전혀 책임이 없다’는 응답은 지난해 24%에서 올해 32%로 늘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