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수 못 보면 어때, 채팅하면 되지’ K덕질 근황 [꿍딴지]

입력 2022-02-12 06:00

“아~ 콘서트 가고 싶어”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가수 ‘덕질’에 대면으로 콘서트나 팬 미팅을 참석하는 게 필수였지.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지금은 그게 쉽지 않아. “우리 영웅님” 하며 이제 막 덕질에 재미를 붙이신 꿍미니네 할머니도 아쉬운 마음이 크시더라고.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덕질도 이어져야 해. 코로나19 유행이 우리를 강타하긴 했지만, K-POP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K-덕질’ 문화는 또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MZ세대가 아티스트와 가까워지는 법, 이렇게 변했다

지난 1월 1일 SM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한 '2022 SMTOWN LIVE @KWANGYA' 콘서트. SM 공식 트위터 캡쳐.

코로나 확산으로 대면 행사가 어려워진 탓일까? 최근에는 온라인 콘서트, 영상통화 팬 사인회는 물론 아티스트와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팬덤 플랫폼이 여러 개 생겨났어.

2020년 상반기 하이브가 출시한 ‘위버스(Weverse)’가 가장 먼저 생겨난 팬덤 소통 플랫폼이야.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에 사적인 SNS라고 이해하면 쉬워.

그룹 투머로우바이투게더의 아티스트(Artist) 공간(왼쪽 사진), 그룹 세븐틴의 아티스트(Artist) 공간에 아티스트가 남긴 게시글(가운데 사진), 그룹 엔하이픈의 멤버십 전용 공간(오른쪽 사진) 등 위버스 어플이 구성되어 있는 모습. 위버스 공식 홈페이지 캡처.

위버스는 피드·아티스트·미디어·멤버십온리 이렇게 구성돼있어. 아티스트(Artist) 공간에는 아티스트만 글을 올릴 수 있는데 팬들은 여기에 댓글을 달고, 자신의 댓글에 아티스트가 대댓글 달아주기를 기다리곤 하지.

위버스 가입은 무료야. 대신 25000원 상당의 돈을 내고 위버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멤버십 독점 콘텐츠를 볼 수 있고, 공연 선예매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과거에 공식 팬클럽 정회원으로 가입해 혜택을 받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지.

프라이빗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아티스트와 팬이 채팅하는 공간. 사진 속 대화창은 가상의 아티스트 BLAKE와 팬의 채팅 화면이다. 디어유 버블 공식 홈페이지 캡쳐.

‘디어유 버블’은 SM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팬덤 소통 플랫폼이야. 위버스처럼 완전히 공개적인 구조는 아니고, 아티스트와 팬이 카톡처럼 일대일로 채팅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 버블은 월 단위로 ‘구독’하는 개념이야. 그룹별로 1인권(4500원)·2인권(8000원)·3인권(11500원)·4인권(15000원) 등등 가격이 책정돼 있는데 돈을 많이 낼수록 여러 명과 채팅할 수 있어.

완전한 일대일은 아니고 일대다 채팅이야. 아티스트는 단체 채팅처럼 모든 팬의 메시지를 볼 수 있고 팬들은 나와 아티스트 사이의 개인 채팅만 볼 수 있어. 모든 팬에게 하나하나 답장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답장하고 싶은 걸 골라서 대답하면, 전체 팬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이야. 이렇다 보니 내가 보낸 메시지에 꼭 맞는 내용의 답장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지.

팬들 사이에서는 메시지를 자주 보내는 아티스트를 ‘버블 효자’라고, 감감무소식인 아티스트를 ‘버블 불효자’라고 부르기도 해. ‘실물 한 번만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 가수한테 채팅 답장 한 번만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런저런 플랫폼에 가입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 같아.

어르신들은 덕질 문화에 탑승 중!

밴드 캡처.

트로트 열풍이 일며 시니어 팬덤도 젊은 사람들만큼 다양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어르신 팬덤은 팬카페보다 팬밴드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주로 50~70대 리더가 밴드를 운영하고 있지.

혹시 팬덤 전문학원이라고 들어봤어? ‘임영웅 영웅시대’ 밴드에서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아 ‘참된 덕후 교실’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어. ‘참된 덕후 교실’은 초보 팬들을 위해 음원 사이트 가입 및 승인 방법, 각종 응원법 등 팬 활동에 필요한 전반적인 교육을 연중무휴로 제공한다고 해.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1대1 예약제로 운영하는 중이야.

덕분에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이 덕질을 위한 교실에 참여해 디지털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됐어. 그동안 노인들은 정보통신 기술로부터 소외돼 있었잖아. 어르신의 덕질 활동이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어.

KBS '주접이 풍년' 방송화면 캡처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팬픽(팬+픽션, 팬이 만든 소설)도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기야. 송가인 팬픽이 대표적인 예이지.

다만 송가인 팬픽은 기존의 팬픽과는 내용이 달라. 아이돌 팬픽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중점으로 펼쳐지는 사랑 쟁취가 주된 내용이라면, 송가인 팬픽은 50~60대 팬이 덕질을 하며 겪는 고충이나 송가인의 노래로 지친 삶을 달래는 내용이 주를 이뤄.

“먹고살기 바쁜 타향살이, 자식들과 왕래가 잦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송가인이란 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중략) 카페 가입해서 송가인님이 잘 되는 걸 내 자식이 잘되는 것처럼 응원하며 행복해하며 노래를 듣고 영상을 봅니다. 너무나 좋습니다.” -‘어느 63세 어게인 이야기’ 중-

송가인 팬픽은 SNS를 통해 MZ세대들 사이에도 퍼졌는데, 대체로 “마음이 찡하다”, “감동 받는다”, “이게 바로 어른의 팬픽” 등의 반응을 보였어. 한 누리꾼은 송가인 팬픽에 대해 “주인공들은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어서 성공, 사랑, 연대 등의 중요한 가치들을 쟁취하고, 송가인은 그 매개가 된다”고 평가하기도 했어.

덕질 문화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 친환경 덕질

혹시 ‘앨범깡’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앨범깡은 불필요한 앨범을 특수한 목적으로 대량 구매하는 것을 말해. 앨범을 하나 사면 팬 사인회 응모권 1개가 주어지니 당첨 기회를 높이기 위해 앨범을 많이 사는 것, 앨범마다 랜덤으로 들어있는 아이돌 포토카드를 모두 모으기 위해 앨범을 많이 구매하는 것을 바로 ‘앨범깡’이라고 할 수 있어.

앨범깡을 한 뒤 버려진 앨범의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앨범을 판매하는 장소에서 앨범깡을 위한 장소를 따로 마련해둘 만큼 앨범깡은 ‘덕후’들에게 하나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어.

문제는 소장용 앨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목적을 다한 앨범들이 바로 버려진다는 거야. 앨범 속에는 플라스틱 CD를 제외하고도 많은 구성품이 들어있어. 앨범 자체가 포토북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포토카드, 팝업카드 등 코팅된 물건들이 들어있지. 또 앨범 보호를 위해 앨범을 비닐로 감싸 판매하곤 해. 결국 앨범은 친환경적이지 않은 소재가 모여 과도하게 포장된 물건이 되어버리는 거야. 이런 앨범이 다시 잘 쓰인다면 다행이지만 앨범깡을 한 뒤 바로 버려진다면 환경오염 문제를 우려할만하지 않을까?

뿌리 깊이 내린 마케팅 관행을 단기간에 바꾸는 데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친환경적 목소리에 경각심을 느낀 몇몇 가수들은 친환경적이고 건전한 팬덤 문화 조성을 위해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

청하 카렌시아 앨범과 송민호 투인피니티 앨범. 핫트랙스샵 캡처.

가수 ‘청하’는 팬들이 오래 소장해야 하기 때문에 찢어지면 안되는 포토카드만 제외하고 친환경 종이를 사용해 앨범을 제작했어. 보이그룹 위너의 송민호의 솔로 앨범 역시 친환경 용지 및 저탄소 용지를 사용해 제작됐지.

이에 팬들은 “좋은 움직임이다” “이렇게 조금씩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

아예 CD가 없는 형태의 앨범을 발매한 그룹도 있어. 1월 18일 컴백한 남성 아이돌 빅톤은 일반 앨범과 함께 ‘플랫폼 앨범’이라는 것을 함께 발매했어. 플랫폼 앨범은 일반 앨범에서 제공되는 CD, 앨범 상자, 화보 책, 포스터 등을 과감히 빼고 포토카드와 멤버들이 직접 쓴 메시지 카드만 실물로 제공하는 앨범이야.

빅톤의 플랫폼 앨범 구성 목록. 트위터 캡처

그럼 음악은 어떻게 듣냐고? CD를 포함한 부가 콘텐츠는 모두 앱에서 감상이 가능해. 플랫폼 앨범 구매는 음반 판매량에 실물 앨범과 똑같이 반영되기도 한다니,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앨범이 대폭 줄어들겠지. 비록 이번에는 일정 기간 한정 판매만 했지만 이런 플랫폼 앨범의 활용이 더 늘어나면 좋겠어.

'K팝포플래닛' 홈페이지.

K팝 팬들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나섰어. 지난해 3월엔 세계 K팝 팬들이 모여 기후위기 대응 플랫폼 ‘K팝포플래닛(K-POP 4 Planet)’을 만들었어.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미국, 브라질, 프랑스 등의 K팝 팬들이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지. 이들은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를 슬로건으로 외치며 여러 기획사에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앨범 제작, 저탄소 콘서트 개최 등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어.

아티스트들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만큼이나 팬덤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야.

최근에는 팬들과 가수가 서로 소통하면서 기부를 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잖아? 앞으로 어떤 새로운 덕질 문화가 생겨날지 그리고 덕질 문화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뀔지 미래가 기대되는걸~!

김미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노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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