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케이생’ 발굴·지원했던 파울 슈나이스 목사 소천

입력 2022-02-11 14:04 수정 2022-02-11 14:05
파울 슈나이스 목사와 부인 기요코 여사가 20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자택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파울 슈나이스 목사가 11일 소천했다. 향년 89세.

슈나이스 목사의 삶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 역사와 맞닿아 있었다. 1958년 독일개신교선교연대(EMS) 동아시아 책임자로 일하기 시작한 뒤 이곳을 우리나라 민주화의 해외 전초기지처럼 활용하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일에서 74년 조직된 기독자민주동지회와 협력하며 군부 독재에 시달리는 한국의 실상을 세계로 알렸다. 80년 5·18 참상을 독일 제1공영방송 도쿄지국에 전해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로 가는 데 결정적 역할도 했다.

비슷한 시기 고 오재식 선생도 도쿄에 사무실을 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도시산업선교회 책임자였다. 둘은 한국의 현실을 세계로 알리고 한국의 민주화 세력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일본의 대표적 지성지 ‘세카이(世界)’ 편집장과 접촉했다. 가상의 인물인 ‘티케이생(TK生)은 이렇게 탄생했고 ‘한국으로부터의 편지’가 게재됐다. 티케이생은 군부 정권의 부조리를 조목조목 고발했고 민주화 인사들의 실태를 알렸다. 훗날 티케이생이 지명관 도쿄여대 교수로 밝혀졌다.

슈나이스 목사는 티케이생에게 글의 소재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본인뿐 아니라 아내와 딸까지 수시로 서울로 보내 정보를 수집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발표된 각종 성명서와 민주화 인사들의 메모를 성냥갑이나 과자 상자에 넣어 일본으로 가지고 와 티케이생에게 전했다.

98년 은퇴한 뒤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생활했던 슈나이스 목사는 2011년 오월어머니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5·18언론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정부로부터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을 받았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