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실종자 수습이 한 달 만에 마무리되면서 붕괴 건물 철거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붕괴사고가 난 201동 붕괴면 우선 철거가 추진되고 있지만 철거범위와 상관없이 도심 한복판 붕괴 건물을 철거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고원인 조사와 책임자 규명에 나선 수사당국은 10일 2차 현장감식을 벌였다.
광주시 등에 따르면 입주 예정자들은 붕괴사고가 발생한 201동을 포함한 1, 2단지 아파트 8개 동 847가구 전체를 철거하고 재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16개 층이 붕괴한 201동과 같은 설계·공법이 적용된 만큼 다른 동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주 예정자들은 “철거에만 최소 6개월~1년이 걸리고 입주까지는 3~4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데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승엽 예비입주자 협의회 대표는 “1, 2단지를 모두 철거하고 재건축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협의회에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입주예정자 700여 명이 참여 중이다.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입주 예정자와 달리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현산)은 전문기관 안전진단 결과를 전제로 한 철거범위 결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공사인 현산은 “실종자 수색 종료 이후 콘크리트 잔해 추가 추락을 막기 위한 작업재개를 지자체와 협의하고 있다”며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 현장 조사와 안전진단 결과가 3월 중 나오면 철거·재시공 범위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201동 1개 동만 철거할지 오는 11월 입주를 앞두고 한창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던 전체 8개 동을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건축할지 입주예정자, 관계기관 등과 협의해 합리적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정몽규 HDC 그룹 회장은 지난달 “외부 전문가, 당국과 상의해 안전점검을 한 뒤 문제가 있다면 분양받은 사람에 대한 계약 해지는 물론 아파트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23~38층이 무너진 201동은 ‘철거 후 재시공’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나머지 7개 동에 대해서는 건축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전체 공정 60%에 달한 화정아이파크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면 입주까지는 최소 3~4년 더 걸리고 철거부터 입주 지연 피해보상금까지 4000억 원 이상의 비용부담을 현산 측이 떠안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붕괴사고 현장에서는 광주 서구청 주도로 피해복구 후속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다. 서구는 붕괴한 201동 남측 외벽 좌·우측 붕괴 면을 우선 철거하기 위한 작업에 금명간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붕괴면 철거는 물론 동별 철거 범위를 떠나 유스퀘어(광주종합버스터미널), 백화점, 할인점, 주상복합건물, 상가 등과 인접한 붕괴 건물 철거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무너진 초고층 건물을 철거한 전례도 드물다.
우선 강도가 센 다이아몬드를 박은 와이어로 건물을 두부처럼 1개 층씩 또는 구간별로 잘라내 들어내는 공법이 거론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폭약을 사용하는 발파공법은 위험 부담이 커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손쉽게 전면 철거를 할 수 있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는 물론 대형 건물 폭파 과정에서 인근 건물의 추가 피해가 우려돼 불가능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6월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 당시 ‘철거 계획서’에만 적혀 있고 비용이 많이 들어 실제로는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팔 길이 30m짜리 일명 ‘롱붐암(특수 굴착기)’ 투입 방안도 자체 중량이 무거워 현대 건물 상태로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붕괴사고 현장에서는 이날 경찰·국과수 등 관계기관 합동 현장 감식이 이틀째 이어졌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기본설계도 등을 토대로 도면과 실제 시공 현황을 비교·분석해 정확한 사고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사본부와 국토부 사고조사위는 압수수색과 현장감식에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주요 사고원인으로 꼽히는 201동 39층 아래 3개 층 동바리(지지대) 미설치, 공법 변경에 따른 역보(수벽) 무단 시공, 콘크리트 부실 양생 등을 따져보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관리 감독청인 서구청과 입주예정자 협의회, 시공사, 감리단이 협의해 전문기관 정밀안전진단을 의뢰하고 그 결과에 따라 납득할만한 철거 범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