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포함해 정치권을 향한 ‘작심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두고 연합뉴스와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취임사에서 강조한 국민통합이 재임 기간 얼마나 실현됐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윤 후보의 ‘적폐청산 수사’ 발언 이전에 나온 것이다. 윤 후보는 전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선거 국면에서도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대립하며 분열하는 양상이 크게 우려된다”며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선 국면과 맞물려 여야 간 공방이 거칠어지며 진영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양상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간 문 대통령은 선거 문제에 거리를 유지하며 언급을 자제해 왔는데, 이러한 태도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가짜뉴스 등이 진영 간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고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이 앞장서서 갈등을 치유하며 국민을 통합시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야권의 유력 인사들에게 당적을 유지한 채 내각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며 “개인적으로는 취지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끝내 모두 고사했다. 진영으로 나뉘는 정치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같은 진영 내에서도 특정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두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권 내 친노·친문 진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 등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여야정 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깝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정치문화부터 보다 통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협치를 제도화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고자 했다”며 “협치를 위해 약식 취임식 전에 야당부터 방문했고, 여야 지도부와 여러 차례 만나면서 초당적으로 힘을 모으기 위한 협치의 틀로 여야정 협의체 설치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야와 정부가 국정을 상시적으로 논의하는 기구를 만든 것은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끝이었다”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야정 협의체는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임기 초반부인 2018년 8월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합의한 기구다. 같은 해 11월 5일 열린 첫 회의를 끝으로 더는 열리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회의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 극복에 정치권이 예산과 입법으로 힘을 모아준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대화하고 타협하며 통합하는 성숙한 정치로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