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반중정서… “다음 정부 외교 정책 바뀔 수도”

입력 2022-02-09 11:33 수정 2022-02-09 14:38
지난 4일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공연자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편파 판정으로 ‘반(反)중 정서’가 고조되자 차기 행정부에서 대중 정책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의 신기욱 교수 연구팀이 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 내용이다.

연구팀은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이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복장 중 하나로 소개된 사실을 전하며 이는 한·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문화전쟁의 최신 사례라고 밝혔다.

연구팀이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지난달 한국인 1000여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26.5점을 기록했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30.7점)보다도 낮은 수치다. 미국에 대한 여론은 69.1%였다. 또 응답자의 42%는 한국 정부가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는 것을 지지했다.

연구팀은 반중 정서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미국여론조사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반중 정서가 전 세계에 확산했음을 방증한다. 한국(77%)뿐 아니라 일본(88%), 호주(78%), 미국(76%) 등 17개 선진국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연구팀은 한국의 반중 정서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등의 지정학적 갈등부터 미세먼지·황사 등 공기오염과 관련된 불만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반감이 거센 점, 젊은 세대가 반중 정서의 기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꼽혔다.

실제로 신 교수 연구팀이 벌인 설문조사에서 중국에 반감이 있다는 응답자의 과반인 55%가 김치·한복 등을 둘러싼 한·중 간 문화적 충돌을 반감을 품게 된 이유로 꼽았다. 62%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존중 결핍을 선택했다. 또한 2020년 퓨리서치센터가 설문조사한 14개국 가운데 한국은 유일하게 젊은 세대(18∼29세)의 반중 정서가 50대 이상 고령 세대보다 더 강한 나라였다.

신 교수는 “젊은 세대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 속에 자라면서 반미 정서 속에 성장한 이른바 ‘586세대’ 운동권보다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 대해 더 비판적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태연구소 소장. 연합뉴스

연구팀은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반중 정서가 과거의 반미 정서나 여전한 반일 정서와는 다르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1980년대에 불거졌던 반미 정서는 한국의 권위주의적 독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지지에 대한 반발이었지 미국인이나 미국의 문화·제도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일 정서는 식민지배란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둔 것으로, 최근까지 일본과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기는 했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일본 문화나 음식, 패션 등을 즐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중 정서는 중국의 문화 제국주의와 반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며, 중국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처럼 들끓고 있는 한국 내 반중 정서가 정치와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확장될 잠재력을 지녔다고 분석한다. 연구팀의 설문조사에서도 78%가 한·중 관계에 대한 정책이 차기 대선 투표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설문 결과 이 관점에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43%에 그쳤고, 젊은 층에서는 38%로 더 낮았다. 중국은 한때 경제적 기회의 땅으로 인식됐지만, 이젠 이러한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높아진 반중 정서가 한국에 들어설 새 정부의 외교 노선을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에 대한 한국의 우호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반중 정서가 한·미동맹 강화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한 미국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차기 대통령이 취임하는 대로 만나 동맹 관계 강화에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