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루지가 잊히지 않도록”…12년만에 벅찬 완주

입력 2022-02-09 04:02
질주하는 사바 쿠마리타시빌리. 뉴욕타임즈 캡처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긴장됐지만 두렵진 않았다. 올림픽 트랙을 꼭 달려보고 싶었다.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지난 6일 중국 베이징 옌칭 국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루지 싱글(1인승) 경기를 막 끝낸 사바 쿠마리타시빌리(21·조지아)는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조지아에서 루지 종목에서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선 주인공이다. 떨리고 설레는 3번의 주행에서 그는 3분 00초 396을 기록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전체 35명(실격 1명) 중 31위로 메달권에서 멀었지만,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사바는 바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끔찍한 사고로 숨진 노다르 쿠마리타시빌리의 사촌 동생이다.

당시 만 22세였던 노다르는 올림픽 개막 전 마지막 연습 주행을 하던 중 트랙에서 이탈한 뒤 기둥에 부딪히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9살 소년 사바는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형의 충격적인 죽음과 그로 인해 가족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생생히 지켜봤다.

질주하는 사바 쿠마리타시빌리. 연합뉴스

비록 노다르의 사망으로 첫 올림픽 진출의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쿠마리타시빌리 가족의 루지를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사바의 가족, 쿠마리타시빌리 가문은 조지아 루지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사바의 증조할아버지는 루지라는 스포츠를 조지아에 소개한 인물이다. 조지아에서 최초로 트랙을 설계했고, 조지아 루지 연맹을 설립했다. 사바의 삼촌이자 노다르의 아버지도 루지 선수로 활약했고 조지아 루지 연맹 회장을 지냈다.

사바는 “노다르 형의 뒤를 이어 루지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으셨다”며 “오히려 가족들은 내가 루지에 도전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다르 형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나 노다르 형을 생각한다”며 “우리 가족 모두가 루지와 함께 해왔다. 조지아의 루지도 노다르 형과 함께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루지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펠릭스 로흐(독일)에게도 노다르의 죽음은 깊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

로흐는 “사바가 올림픽 트랙에 서 있는 모습을 보기 좋았다. 사바가 이곳에 오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사바의 올림픽 도전은 스포츠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