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런 가발 속에 감춘 민머리,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리는 불안한 눈빛…. 초짜 개원의 박원장은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웃긴다. 그는 생계가 고민인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병원을 차리기만 하면 스포츠카를 타고 명품 시계를 찰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
티빙 오리지널 ‘내과 박원장’으로 첫 코믹 연기에 도전한 배우 이서진이 7일 오후 화상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왕이나 실장같은 예전의 배역은 내게 익숙치 않았지만 중년 남성으로서 박원장에겐 마음이 갔다. 이런 B급 감성의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작품 속에서 대부분 도회적이고 점잖은 분위기를 뿜어내던 이서진의 연기 변신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다. 이서진은 “사실 저 스스로는 변신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박원장 역시 제가 갖고 있는 모습 중 하나”라며 “중년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역할엔 공감할 부분이 많다. 박원장은 심리적 여유뿐만 아니라 금전적 여유까지 없다보니 거기에 연연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박원장과 인간 이서진은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 그는 “성장과정에서 절약이 몸에 뱄다. 전기 낭비하고 음식물 남기고 그런 걸 굉장히 싫어한다”며 “어찌보면 내가 박원장보다 더 짠내 나는 사람일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금은 머리숱이 많지만, 탈모는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중년 남성은 누구나 고민할 것”이라며 “병원 가는 횟수가 늘어 건강에 대한 고민이 제일 많다”고 이야기했다.
유쾌한 촬영장 분위기, 베테랑 배우들 간 케미에 대해 얘기하며 이서진은 즐거워했다. 그는 “민머리로 특수분장을 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제일 재밌고 편안한 촬영장이었다”며 “다들 코미디에 적합한 분들이고 연기 경력이 길어서 호흡이 좋고 긴장하는 분위기도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개성 있고 경험 많은 배우들은 코미디에 도전하는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이서진은 “김광규 배우와는 평소 워낙 가깝게 지내고, 라미란이나 차청화 모두 성격이 밝고 재밌는 분들”이라면서 “촬영할 때보다 촬영 안 하고 있을 때가 재밌는 일이 많다”고 했다. “방송을 보면 어떤 게 진짜 대사고 어떤 게 애드리브였는지 배우들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며 그는 웃었다.
특히 아내 사모림 역의 라미란과는 다른 작품에서도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서진은 “라미란씨는 저의 ‘원픽’”이라며 “늘 같이 작업하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을 함께 해서 좋았고, 다음에는 스릴러물 등 여러 다른 장르에서 같이 연기하고 싶다”는 러브콜을 보냈다.
코믹 연기는 의미있는 도전이었지만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무언가 얻어가기보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는 “몰입해서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드라마지만 예능같은 느낌이 들고 인터뷰도 들어간다”며 “편하게, 웃을 준비하시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서진은 ““배우로서 충분히 감사할 정도로 사랑받고 어느 정도 성취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되는 거 같다. 작품을 볼 때 ‘잘 될 것 같다’ 보다는 ‘하면서 재밌을 것 같다’ 싶은 걸 선택하게 된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