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쇼트트랙, 1위 없이 금메달을? 실격, 또 실격

입력 2022-02-08 06:00 수정 2022-02-08 06:00
비디오 판독 끝에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런쯔웨이가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권현구 기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이 계속되고 있다. 심판진이 개최국인 중국에 유리한 쪽으로 판정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쇼트트랙은 선수들 간 충돌이 불가피한 종목으로 심판진의 주관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쇼트트랙 최강국’으로 꼽히던 한국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승승장구하며 메달 사냥에 순항 중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선태 감독을 영입한 데 이어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러시아 국적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까지 데려와 한국 선수단의 전술과 대회 노하우를 꿰찬 상태다. 이번 대회 강호로 평가되는 전력이었지만, 중국의 메달 수확에는 유리하게 내려지는 판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첫 판정 논란은 5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00m 혼성계주에서 터져 나왔다. 중국은 2분37초34를 기록하며 이탈리아(2분37초39)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대회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논란은 준결승 경기에서 발생했다. 중국은 준결승에서 헝가리와 미국에 이어 3위로 통과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비디오 판독 끝에 미국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실격 처리돼 ‘어부지리’로 결승에 향했다.

13바퀴를 남기고 결승선까지 3위로 달리던 중국은 선수 교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런쯔웨이가 장위팅를 밀어주려는 과정에서 ROC 선수가 끼어들어서였다. 터치가 되지 않았음에도 런쯔웨이는 그대로 경주를 이어갔다.

중국의 터치를 방해한 ROC는 페널티를 받았고, 미국도 코스 기준선인 블루 라인을 넘어 안쪽에서 블로킹했다는 이유로 반칙 처리돼 실격됐다. 중국은 터치하지 않았음에도 실격을 면했다.

경기를 지켜본 한국 남자대표팀 맏형 곽윤기(고양시청)는 “중국이 우승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억울하고 미안한 감정이 든다”며 “내가 꿈꿨던 금메달의 자리가 이런 것인가라고 반문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 대표팀과는 관계없는 판정이었지만, 우리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너무나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디오 판독이 길어지면서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며 “터치가 안 된 상황에서 그대로 경기를 진행한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반대로 다른 나라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결승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베이징=권현구 기자

곽윤기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편파 판정의 다음 피해자가 한국 선수가 되며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편파판정 논란은 더욱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강원도청)과 이준서(한국체대)는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판정 시비 끝에 실격 탈락했다. 황대헌은 1위로 골인했으나 레인을 늦게 변경하는 반칙을 범했다는 판정을 받고 실격됐고, 2위로 진입한 이준서 역시 레인 변경 반칙을 지적받아 실격됐다.

비디오 판독 끝에 헝가리의 린 샤오린이 실격 당하자 허탈해 하고 있다. 베이징=권현구 기자

황대헌과 이준서가 실격되면서 뒤따라 진입한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오르는 행운을 누렸다. 경기 결승에서도 헝가리의 사올린 샨도르 류가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역시 레이스 도중 반칙으로 인해 실격됐다. 결국 런쯔웨이가 금메달을, 리원룽이 은메달을 차지하며 중국 선수들이 1, 2위를 휩쓸었다. 반칙 판정으로 인한 상대 선수들의 낙마 덕에 1위 한번 없이 금메달을 수집한 셈이다.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쇼트트랙 선배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터뜨렸다. 경기를 지켜본 진선유 KBS 해설위원은 “심판이 경기를 결정한다. 황대헌의 플레이는 국내 대회였으면 박수 받을 플레이였다. 칭찬 받아 마땅했다”고 평가했다. 이정수 KBS 해설위원도 “하늘이 내려주는 메달이 아닌 심판이 내려주는 것 같다. (앞으로는) 1위로 들어와도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 계속되자 윤홍근 쇼트트랙 한국 선수단장은 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황대헌과 이준서가 탈락한 상황에 대해 공개적인 항의를 표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수뇌부는 대한체육회와 대책회의를 열고 추가 이의 신청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