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은 늦은 나이에 입신출세했지만, 주나라 시조인 무왕의 아버지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아내 마씨는 친정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강태공이 입신출세한 어느 날, 마씨가 강태공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강태공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강태공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법이오”
인생은 난관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 세상은 염량세태(炎凉世態)라서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배우자나 부모, 자식조차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게 세상사다.
마씨는 단지 세상사 이치대로 했을 뿐이거늘 강태공은 어찌 하늘이 맺어 준 부부의 인연마저 한번 엎지른 물에 비유하며 무 자르듯 끊어냈단 말인가. 참으로 야박한 강태공이 아닌가.
얼마 전, 한 중년 여성과 상담했다.
“저희 부부는 특별한 문제 없이 18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남편은 중소기업을 건실하게 일구어서 제법 큰 아파트도 마련했습니다. 두 아이도 구김살 없이 키웠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원에도 가 보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남편에게 제 상태에 대하여 의논도 해보았습니다. 남편은 처음엔 관심을 보이더니 얼마 안 가 시들해졌습니다. 제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여 이혼하고 싶습니다.”
이혼하고 싶은 또 다른 진짜 이유, 즉 내연남 또는 남편 모르게 진 빚 등이 있는지를 탐색해 보았으나, 전혀 없었다. 다만, 이 여성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잠깐 바람을 피운 사실이 있으나, 이미 17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다 잊었다’라고 말하면서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담을 마치고 뚜렷한 이혼 사유가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내가 ‘이혼하자’면서 변호사를 만나고 왔다고 이야기하더란다. 남편은 ‘아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내를 설득해볼테니 잠시만 이혼 소송을 미뤄달라’고 부탁했다. 필자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면서 한 마디 덧붙었다.
“혹시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바람피우셨어요? 지금까지 진지하게 사과한 적은 있으세요?”
그리고 며칠 후, 여성이 다시 찾아와서 이혼하지 않기로 했단다. “남편이 제게 울면서 사과했어요. 오래전에 바람을 피웠는데,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사과를 못했다면서...남편의 사과를 받으니 답답했던 울혈이 뚫리는 것 같아요”
때로는 엎지른 물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