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원자력을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Taxonomy) 규정안을 발표하자 한국 정부도 원전을 제외한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의 수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을) 다시 검토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등 친환경 경제활동을 구분하고 녹색채권·녹색기금 등 각종 금융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소를 포함하면서 원전은 최종 제외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원전 수출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차질 생기고 수주경쟁력도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간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EU 회원국 중 프랑스·폴란드·체코 등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자고 주장했고, 독일·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포르투갈·덴마크 등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이리드 맥기네스 EU 금융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원자력을 포함한 이유는 에너지 전환기에 자원으로서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라면서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기 위한 조건은 엄격하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EU 택소노미 규정안에 따르면 신규 원전 투자가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가 완료돼야 한다. 또 원전을 신규로 지으려는 국가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안과 원전 폐기를 위한 기금 등을 마련해야 한다.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시설 운용을 위한 단계별 계획 수립도 조건이다.
EU의 이번 결정에 따라 환경부가 원전을 제외한 K택소노미 최종안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EU가 신규 원전 건설 허가 시점을 2045년으로 결정한 이유와 세부적인 원전 포함 근거부터 파악할 계획”이라며 “EU가 제시한 조건들이 국내 에너지 정책 등 여건에 부합하는지도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EU 택소노미 규정안이 향후 4개월간 진행될 유럽의회 논의 과정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27개 EU 회원국 중 20개국이 규정안에 반대하거나 유럽의회 의원정수 706명 중 과반 이상이 반대하면 규정안은 부결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K택소노미 시범사업을 통해 국제 동향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며 “최종안 변경 확정시기는 현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