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3일 군은 8888항쟁의 학생 출신 민주인사 밍꼬나잉을 포함해 7명에 대한 체포 수배 영장을 발표하였다. 그 7명에 포함된 한 사람의 여성은 바로 나였다… 지명수배 이유는 505조 위반이라고 했다. 군의 존엄을 실추시킨 선동이라는 이유였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 이후 발표한 첫 체포 리스트에 오른 7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판셀로(Pencilo) 작가의 책 ‘봄의 혁명’이 출간됐다. 미얀마 민주항쟁에 대한 현지 운동가의 증언이 국내에서 출판된 것은 처음이다.
1990년대생인 판셀로는 미얀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페이스북 팔로어 100만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의 열렬한 지지자인데다 책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주의를 전파해온 판셀로는 쿠데타 당일부터 경찰들의 연행 대상이었다.
그는 집에서 버티다 도피를 시작했다. 처음엔 양곤시내에서 숨어 살다 시골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수배자들이 가족들에 대한 위협을 못 견디고 자수하는 걸 보면서 가족을 데리고 국경을 몰래 넘어 태국으로 들어갔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현재 워싱턴주 임시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봄의 혁명’은 쿠데타 당일부터 태국 밀입국까지 100여일에 걸친 판셀로의 도피 이야기와 이 기간 미얀마 현지에서 진행된 민주항쟁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판셀로는 도피 중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항쟁 소식을 알렸고 군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4월에는 은신처에서 MBC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이 책은 보도로만 접해온 미얀마의 지난 1년을 생생하게 아프게 전한다. 미얀마 군부의 악행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군부는 ‘72시간 침묵 시 쿠데타가 무효가 된다’는 소위 ‘72시간 궤변’을 유포해 쿠데타 초기 시민들의 저항을 막았다. 또 시민들을 위협하기 위해 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범죄자 2만5000명을 석방하기도 했다.
판셀로는 책에서 미얀마 민주주의를 가로막아온 군부의 역사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군부는 번번이 선거 결과를 뒤집었고, 국민들의 저항을 무력과 거짓말로 제압해왔다. 군부 최고사령관이자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민아웅흘라잉 장군은 2017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 집단 학살을 주도하고 그 책임을 수치 고문에게 떠넘겼다. 이 사건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권운동가로서 수치 고문의 국제적 명성을 추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에는 20만명이 사망한 대형 태풍이라는 재난을 이용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의석의 25%를 군인들이 차지하도록 하고 이들의 동의 없이는 헌법을 바꾸지 못하도록 한 신헌법을 제정했다.
총격으로 사람들이 죽고 가짜 뉴스가 극성을 부렸어도 미얀마 국민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총선 재실시 약속을 믿고 항쟁을 중단한 1988년의 기억을 답습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도 이젠 버렸다. 대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수 민족들과 미얀마 주류인 버마족과의 민족 통합도 이뤄지고 있다.
“국민은 쿠데타 발발 이후 100일이 지나셔야 무기를 거머쥐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만이 저 개 같은 군부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얀마 국민은 이제 무기를 든 혁명을 선택하였다.”
집을 빠져나오면서 머지않아 되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판셀로는 다른 나라로까지 가게 돼버렸다. 미국에 도착한 그에게 남편은 “너는 이제 자유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판셀로는 이렇게 썼다.
“아직 풀려나지 않은 감옥 안에 사람들, 감옥 같은 나라에 갇혀버린 국민… 나는 아직 완전한 자유의 몸이라 할 수 없다. 나의 영혼은 미얀마의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여전히 갇혀 있다.”
판셀로의 이 기록은 한국어로 처음 출간됐다. 대학생들이 만든 출판사 모래알이 국내에 있는 미얀마 민주항쟁 지원 그룹을 통해 판셀로의 원고를 입수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