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과오 밝히자는데, 팀에서 완강히 거부?

입력 2022-02-05 09:57

김정수 DRX 감독이 시즌이 열리고 채 한달이 지나기 전에 지휘봉을 빼앗겼다. 감독으로서의 의무사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감독은 본인의 귀책사유를 공개하고 대중의 평가를 받자고 재차 요구하고 있지만 팀에선 불가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이 괴이한 현상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4일 DRX는 공식 SNS를 통해 “이날 부로 김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표준계약서 상 감독의 의무사항 위반 등이 이유”라고 밝혔다. DRX는 자체적인 징계위원회와 이사회를 소집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첨언했다.

DRX는 지난주 김 감독을 로스터에서 말소하며 새삼 이목을 샀었다. 그리고 이날 계약 해지를 공식화하며 사실상 김 감독과의 결별을 선언한 셈인데, 김 감독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해 ‘징계’의 대상이 됐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DRX는 계약 해지 발표 한 시간 전 언론사를 상대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김 감독의 계약 해지 사유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지만 돌아온 답변은 건조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최병훈 DRX 단장은 “정상적인 팀 운영에 비협조적인 태도였고 의무사항 불이행 등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었다”면서 “법률적 제약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계속된 귀책사유 관련 질문에 최 단장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3년 동안 지속해왔던 전체회의와 팀장회의에 무단 불참했고 스크림을 하는 도중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다수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계약서상 위반이냐’ ‘스크림에 불성실했느냐’ ‘폭행, 욕설 같은 행동이 있었느냐’ ‘선수와의 불화가 있었느냐’ 등의 질의가 줄을 이었지만 최 단장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귀책사유 미공개는 물의를 일으킨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조치인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되레 당사자가 모든 내용을 공개하자고 요구하고 팀에선 거부하는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DRX측은 김 감독에게 계약 해지 사유를 통보한 상태로 알려져있다.

김 감독은 이번 계약해지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DRX의 계약해지 발표 직후 본인 SNS 페이지를 통해 “제가 회사라는 비즈니스 조직의 일부로서 부족한 모습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직원이기 이전에 e스포츠 팀의 감독이다”며 “선수들의 입장에 서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최대한 보장하며, 누구보다도 DRX의 승리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라도 회사에서 동의만 해주시면, 팬 여러분들께 직접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일주일 전 로스터 말소 당시에서도 “최상인 대표가 동의한다면 있었던 모든 일들을 직접 당사자로서 팬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매체 간담회에서 ‘양측 동의 하에 모든 내용을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의에 최병훈 단장은 “저희가 말씀드릴 건 아니다”면서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사자가 자신의 과오를 공개하자고 하는데, 팀에서 법률적 제약을 탓하며 방어하는 유별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팀에서 공개를 꺼려할만한 내용이 귀책사유에 담겨 있을 거란 유추가 가능하다. 양측이 동의한다면 팀측에서 말하는 ‘법률적 제약’은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수 감독측은 법적 대응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 소속사인 쉐도우 코퍼레이션의 박재석 대표는 “계약할 때와는 사뭇 다른 해고 과정이 씁쓸하다. 김정수 감독은 처음 DRX의 이름으로 선수들과 뭉쳤을 때의 마음에 변함이 없다. 김 감독이 조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귀책사유를 알 수 있는지 묻자 “e스포츠 팬들은 알 권리가 있고, 저희는 말씀드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약상 회사의 허락 없이 해지 관련 사정을 말씀드리면 김 감독은 막대한 위약금을 물게 되는 상황”이라면서 “계속 말씀드리지만 회사가 동의만 해주면 모든 것을 다 공개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