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도련님, 아주버님, 제수씨, 아가씨, 처제, 처형… 한국 사회에서 남편·아내 가족의 호칭을 적절히 구사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호칭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색함 탓에 섣불리 말을 건네지 못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호칭 체계의 괴리는 가족 간 소통의 단절을 불러오기도 하죠.
설 연휴가 끝난 직후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예비 며느리’가 호칭 문제로 곤혹을 느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쓴이는 신랑의 손아래 동생에게 ○○씨라고 불러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며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는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A씨는 오는 6월 결혼을 앞두고 시부모님댁에 방문해 첫 ‘시가 명절’을 보냈습니다. 시가에 잘 보이고 싶었던 만큼 긴장감도 컸는데요, 복작이는 주방에서 홀로 떡국도 끓이고, 먼저 나서서 허드렛일도 도맡아 했습니다. 무사히 명절을 나는 듯했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온 가족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덕담을 주고받을 때였는데요, A씨는 시동생 부부에게 “OO씨랑 동서도 올 한해 건강하세요”라며 새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를 들은 시어머니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가족끼리 OO씨가 뭐냐, 서방님이라고 해야지”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민망해진 A씨는 얼굴이 온통 붉게 달아올라 “죄송합니다”라며 거듭 고개를 숙였습니다.
A씨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시동생에게 왜 서방님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색하고 민망하다”면서 “그 순간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서방도 아닌데 왜 서방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그렇게 부르라는 시댁이 있느냐” “OO씨가 올바른 표현이다” “난 서방님이라고 절대 못 할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반면 호칭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영향을 받는 시대적 현상인 만큼, 다른 세대를 살아온 시어머니가 충분히 불편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A씨 뿐만 아니라 시가 식구의 호칭 문제로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온라인커뮤니티에도 호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이 공개됐는데요, 갓 결혼한 여성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호칭은 명절 차례상 차리기만큼이나 어려운가 봅니다.
보통 OO님은 윗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의 가족 간 호칭이 사회갈등 형태로도 증폭되고 있다며 지양해야 할 성차별적 언어로 규정했습니다.
‘친가’(親家), ‘외가’(外家)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성평등에 어긋나는 표현입니다. 남편의 집안은 높여 부르는 ‘시댁(媤宅)’, 아내의 집안은 집이라는 뜻의 ‘처가(妻家)’도 마찬가지죠. 남편 식구와 아내 식구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호칭이 친척 사이의 친밀도마저 구분 짓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착화된 호칭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수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성평등이 보편적 가치가 됐다고 할 만큼 사회 인식이 많이 달라졌으니 호칭 문화도 이젠 바뀌어야겠죠. 국립국어원도 다변화된 사회 환경에 맞게 언어예절에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먼저 나서서 서방님·도련님, 아가씨가 아닌 OO씨라고 불러보는 건 어떨까요. 만일 이해하지 못하는 집안 어르신이 계신다면 가족문화를 향유하는 세대 간 방식의 차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금은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는 걸 차분히 설명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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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