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달랑 두 번, ‘청년’도 겨우…어영부영 수비토론 [꿍딴지]

입력 2022-02-04 17:24 수정 2022-02-04 18:19

대선을 한 달여 앞둔 3일, 대선후보 4인의 TV 토론회가 열렸어. 누굴 뽑아야 할지 고민 중이던 꿍미니들에겐 희소식이었지. 후보로부터 직접 주요 공약을 듣고 나라를 이끌어갈 비전을 확인할 좋은 기회니까.

특히 여야 유력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청년 표심을 잡겠다며 청년층을 염두에 둔 발언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20대 꿍미니들은 어떤 말이 오갈까 더욱 궁금했어. 3일 저녁 8시, 우리는 기대를 가득 안고 TV를 켰어.


청년과 여성, 우리 얘긴 언제 나와?

20대 여자인 우리는 토론회에서 ‘여성’, ‘청년’이 어떻게 언급될지 주의 깊게 봤어. 하지만 여성·청년 이슈는 자주 거론되지 않더라고.

토론회 2시간 동안 ‘여성’이라는 단어는 겨우 2번 언급된 게 다였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윤 후보에게 질문할 때, 그리고 심 후보가 마무리 발언에서 “여성과 청년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할 때.

‘청년’이라는 키워드는 어땠을까. 후보들이 부동산 정책에 관해 토론할 때 청년 원가주택, 군필자 청약 가점제라는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이 등장했지. 하지만 일자리·성장 분야 토론 때 ‘청년’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어.

더 아쉬운 점은 몇 번 등장하지 않은 여성과 청년이라는 키워드마저도 유력 후보인 이 후보나 윤 후보의 입에서 주도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안 후보, 심 후보가 질문을 통해 끌어냈다는 거야. 청년층 지지가 필요하다며 호소했던 것에 비춰볼 때, 20대 유권자로서는 아쉬운 태도였지.

TV토론회는 앞으로도 수차례 예정돼 있다고 해. 그때는 여성과 청년 정책에 대한 후보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길 기대해.

우리의 눈길을 끈 모멘트

▶ 어영부영 수비 모멘트

KBS 방송화면 캡처

토론에서 상대에게 집요하게 팩트를 따져 묻곤 하잖아. 이러한 공격을 후보들이 어떻게 막아내는지 ‘수비 모멘트’를 눈여겨봤어. 후보들은 즉답을 피하거나, 두 번이나 오답을 말해버리거나, 그런 적 없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수비하는 모습을 보여줬지.

(심) 배임 혐의가 유죄라고 보시나요?
(윤) 시장으로서 대장동에 들어가는 비용과 수익을 정확히 가늠하고 설계하신 것은 맞습니까?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질문에 ‘이미 검증했다’는 답으로 일관하더라고. 지난 국정감사 청문회에서 그리고 여러 언론에서 검증했다고 돌려 말하던 게 기억에 남아.

윤 후보는 주택청약점수에 관해 묻는 안 후보에게 연속해서 오답을 내놨어.

(안) 청약점수 만점이 몇 점인지 아십니까?
(윤) 40점….
(안) 84점입니다

(안) 작년에 서울지역 청약커트라인이 어느 정도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윤) 거의 만점….
(안) 62.6점입니다

부동산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 윤 후보의 발언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주택청약점수에서 두 번이나 ‘땡’을 당하다니 안타까웠어.

윤 후보가 앞서 발표한 LTV가 80%였나 90%였나를 두고 이 후보와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어. 자신은 LTV 80% 주장을 유지해왔다는 윤 후보의 주장에 이 후보는 “팩트체크 해주실 것으로 믿고요”라며 넘어가더라고. 국민의힘 선대본 공보단은 이날 토론 진행 중 입장문을 냈어. 윤석열 후보는 LTV 90%를 공약한 적이 없고, 80% 공약을 유지하고 있다며 앞서 90% 완화 예정이라고 보도된 것은 공식 발표가 아닌 추정 기사였을 뿐이라고 설명했지.

날카로운 공격도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멋있는 수비가 없어서 아쉽기도 했어.

▶ ‘하여튼’…반쪽 사과 모멘트

KBS 방송화면 캡처

이날 토론에서 심 후보는 윤 후보에게 배우자 김건희 씨가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두둔한 발언을 해서 2차 가해를 받게 된 김지은씨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어.

(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다면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뭐 그런 것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으신 분에 대해서는 김지은 씨를 포함해서 모든 분에게 하여튼 공인의 아내도 공적인 위치에 있으니까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다면”,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공인의 아내도 공적인 위치에 있으니까”…. 한 문장의 사과 발언 앞에 붙여진 세 마디는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 자기 정당화에 가까웠다고 생각해. 그래서 윤 후보의 사과를 보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 생방송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토론회 직후 심 후보는 기자들에게 “(윤 후보는) 검사 출신이시니 육하원칙을 잘 아실 텐데, 그에 따른 정확한 사과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어. 윤 후보는 본인이 말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 분명하게 책임감을 느끼고 사과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더라고.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첫 출발이라 생각해.

▶ “뭔지 아십니까?” 퀴즈쇼 모멘트

KBS 방송화면 캡처

자유주제 주도권 토론에서 안 후보가 연금 합의 이뤄낸 거 봤어? 안 후보가 “국민연금 개혁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하겠다고 공동선언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제안했더니 나머지 후보들이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잖아. 사회자 정 교수도 이 토론에 대해 “(안 후보가) 세 후보에게 공통의 약속을 끌어내는 주도권 토론을 해주셨다”고 평가했지. 그 순간만큼은 토론 진행자 같은 면모를 보였던 것 같아.

그런데 일부는 퀴즈쇼 진행자 같았어.

(안) 하이급 전투기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거기에 해당하는 FX2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아마 부품공급문제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아십니까?”로 이어지는 대화는 토론이라기보다 퀴즈 대결이 아닌가 싶더라고. 그런데 이건 안 후보뿐만이 아니야.

(이)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지요. RE100이 뭐죠?
(이) 그러니까 재생에너지 100%…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RE100, EU택소노미, 블루수소 같은 질문을 던졌어. 윤 후보가 답을 못하자 자문자답 식으로 설명했는데 마치 장학퀴즈를 방불케 하더라고. 이번 퀴즈쇼의 출연자는 주로 윤 후보였어. 근데 이게 진짜 퀴즈쇼였다면…. 떨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시간 분배 그게 최선이냐? 모멘트

KBS 방송화면 캡처

후보마다 7분의 주도권을 가지고 최소 2명의 상대 후보에게 질문해야 하는 주도권 토론이 있었어. 과연 후보들이 그 취지에 맞게 시간 안배를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어.

일자리·성장 주도권 토론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서로에게 각각 약 6분 30초, 6분을 할애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안 후보에게 사용했지. 안 후보 역시 윤 후보에게 약 6분 4~50초의 질문을 던진 뒤 이 후보에게 짧은 질문 한마디를 건넸어.

결국 모든 후보가 특정 후보에게만 구체적인 질문을 한 뒤 다른 후보에게는 짧은 질문만 건넨 셈이지. 자연히 양강 후보가 아닌 후보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어. 후보들이 2인 이상 후보에게 질문해야 한다는 규칙의 구색을 갖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

다음 토론을 기다리며 한 마디

민초 : 웬일로 배우자 거론을 안 하지? 걱정했던 것보다 네거티브가 적은 토론이었어. 내가 너무 기대를 안 한 걸지도~

고수 : 우여곡절 끝에 주요 현안에 관한 후보들의 생각을 한 번에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건 좋지만…. 아직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을 벗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데자와 : 크게 두각을 드러낸 후보가 없었어. TV토론의 존재감이 후보들에게 굳히기 혹은 뒤집기가 되는 큰 기회였을 텐데 말이지. 별반 차이를 못 느껴서인가, 토론이 끝나고 누가 잘했나 순위를 매겨보려고 했는데 순위 정하기가 쉽지 않았어.

따파 : 질문은 길게 던지고 정작 상대방 후보에게 답변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어. 다른 후보가 답변할 때 경청하지 않고 대본을 읽거나 말을 자르고 본인 말만 하고. 우리가 궁금한 건 답변 내용이라고~!

올리브 : 후보들이 2030 표심을 잡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데 정작 토론에선 청년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 같아서 아쉬웠어. 2시간 내내 청년 관련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렸거든. 다음 토론에서는 청년 이슈가 활발히 다뤄지길 기대해볼게.

김미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노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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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정 인턴기자
한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