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택한 유럽… 확진자 폭증에도 ‘위드 오미크론’

입력 2022-02-02 20:48
국민일보DB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유럽의 신규 확진자 수가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국가들은 오히려 방역 문턱을 크게 낮췄다.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입원 환자·사망자 수가 비교적 안정화됐다는 판단에 방역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덴마크 이어 속속들이 문턱 낮춰

유럽연합(EU) 국가 중 1호로 방역 조치 해제를 발표한 덴마크는 1일(현지시간) 코로나19를 더는 ‘사회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모든 방역 규제를 완전히 폐지했다.

이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할 의무도, ‘방역패스’를 제시할 의무도 없어진다. 대중교통이나 상점, 레스토랑 실내 공간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지 않아도 대형행사나 바, 디스코텍에 가는 것도 자유로워졌다. 다만 병원, 건강관리시설, 요양원 등에서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기로 했다. 의무 사항은 아니다.

노르웨이도 대부분 방역 제한조치를 해제했다. 식당·주점의 영업시간 제한조치는 사라졌다. 기존 오후 11시까지였던 주점의 주류 판매 시간제한 없다. 더는 재택근무를 권고하지도 않는다.

별도로 인원 제한을 두지도 않았다. 기존에는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 10명 이하를 유지해야 했지만 이러한 지침이 해제된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만원 관중을 볼 수 있게 됐다. 확진자를 밀접 접촉한 사람도 격리 의무가 해제된다. 노르웨이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입국 시 별다른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총리는 이날 이러한 내용을 발표하며 “확진자 수는 늘었지만 입원 환자 수는 줄었다. 백신이 보호해주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19의) 높은 감염위험과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모두 백신 접종률 80%를 넘긴 데다 위중증 환자 수가 예측 가능한 수준에 접어들자 방역지침의 고삐를 푼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인구 500여만명 수준인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최근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르지만, 입원 환자 수는 수십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오스트리아도 이날부터 식당과 상점의 영업시간 제한을 오후 10시에서 자정까지로 연장했다. 오는 12일부터는 일반 상점에 출입할 때 방역패스 제시 의무도 폐지했다. 대신 백신 접종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백신 접종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백신 미접종자는 벌금으로 최대 3600유로(약 480만원)를 내야 한다.

핀란드도 이날부터 방역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해 늦어도 이달 안에 대부분 규제를 끝내기로 했다. 음식점의 영업 제한 시간이 이날 기존 오후 6시에서 오후 9시로 완화되고, 각 지방정부의 결정에 따라 헬스장, 수영장, 극장 등도 문을 열 전망이다.

프랑스는 2일부터 공공장소 입장 인원 제한, 실외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의무를 해제했다. 오는 16일부터는 경기장, 영화관 등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폐쇄된 나이트클럽도 문을 열 전망이다. 프랑스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지난 7일간 평균 약 32만2000명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일주일 전(36만6000명)과 비교하면 대폭 감소했다.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방역 지침을 고수하던 네덜란드도 지난달 26일 ‘봉쇄’ 조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식당과 술집, 박물관 등에 대한 영업을 허용했다. 극장, 공연장, 박물관 등 문화 시설과 축구 경기장도 다시 문을 열었다.

유럽 내 오미크론 변이의 진원지로 꼽혔던 영국도 실내 마스크 착용, 대형 행사장 방역패스 사용 등 주요 방역 규제를 담은 ‘플랜 B’를 폐지했다. 여기에 다음 달부터는 확진자 자가격리도 아예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아일랜드는 기존 식당과 술집에 적용했던 오후 8시 이후 영업 제한 조치를 중단하고 방역패스 제도도 없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로이터=연합

WHO는 봉쇄 조치 완화 ‘우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방역 완화 조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희망 섞인 전망이 섣부를 수 있다는 우려로도 해석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오미크론 변이의 증상이 덜 심각하다는 이유로 전염을 막는 게 더는 불가능하다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등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 데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사망자가 매우 우려할 만큼 늘어났다. 이 바이러스는 위험하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코로나19에 대해 승리를 선언하거나 전염을 막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경고했다. 판케르크호버 기술팀장도 “지금은 규제를 한꺼번에 없앨 때가 아니다”며 “규제 완화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하나씩 진행돼야 한다”고 우려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비상대응팀장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데 ‘더 많은 선택권’이 있지만, 현재 유행하는 전염병이나 위험 인구, 면역력이 있는 사람들의 수, 의료 접근성 등과 같은 요소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국 정부를 향해 “모든 나라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을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국가는 정치적 압박 때문 조기에 규제를 완화할 것이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전염이나 중증 환자,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