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내부자거래에 상폐도… 코스닥 ‘신뢰 붕괴’ 어쩌나

입력 2022-02-02 05:55 수정 2022-02-02 19:18
국민일보DB

연초부터 시장을 지탱해주던 대형 우량주들에 잇달아 개별 악재가 발생하면서 코스닥시장이 ‘디스카운트’(할인) 몸살을 앓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 불거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은 시장 전체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부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기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시사하면서 국내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커져 조정이 발생했다. 여기에 잇따른 사건·사고가 직격탄으로 작용해 코스닥 ‘패닉셀’(공포 투매)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코스닥 대형주에 닥친 수난이 금리 이슈 이상으로 시장 안정성에 내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총 1·2위 우량주 연달아 악재

설 연휴 직전인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총 1·2위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에코프로비엠은 각각 22.06%, 34.44%씩 하락했다. 시장 하락률(-15.58%)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시장 대장주를 다투는 두 회사의 내림세는 외부적인 수급 변화 이전에 내부 악재성 요인이 먼저 발생하며 시작됐다.

2018년 말 금융감독원이 감리에 나서면서 제기됐던 셀트리온그룹의 회계 부정 의혹은 3년 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의 국내외 제품 판매를 전담하는 셀트리오헬스케어가 ‘가상매출’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최근 금융 당국이 해당 안건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국 판단이 나오는 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3월쯤 최종 결정이 나오게 되면 셀트리온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 다만 최악의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박재경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셀트리온 분식회계 논란이 회계 위반으로 결론이 나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에 대한 심의가 개시된다”면서 “회계 위반의 고의성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불어닥친 악재를 기회 삼아 지난 18일 처음으로 코스닥 시총 1위에 올랐다. ‘왕관의 저주’일까. 대장 자리를 꿰찬 후 연달아 악재가 터졌다. 지난 21일 청주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며 주가가 하락해 2위로 회귀했다.

지난 21일 오후 3시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에코프로비엠에서 큰불이 났다. 연합뉴스

이어 26일 임원진이 내부자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당국은 2020년 에코프로비엠의 일부 임원진들이 외부 공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2020년 2월 3일 SK이노베이션과 에코프로비엠이 맺은 2조7412억원 규모 장기공급계약 공시 이전 핵심 임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했다는 내용이다.

당일 19%대 떨어졌고, 다음날에도 내림세를 이어갔다. 이후 소폭 반등에 성공했으나 내부자거래 여파로 25%가량 수직 낙하했다.

횡령에 상장 폐지, 내부통제시스템 ‘빨간불’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피해 주주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왼쪽)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신라젠과 오스템임플란트는 회사 임직원의 배임과 횡령 문제로 거래가 정지된 사례다. 신라젠은 전 경영진이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되며 2020년 5월 4일부터 거래가 중단됐다. 이후 다음 달인 같은 해 6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라 다섯 달 뒤인 11월 30일 코스닥시장 기업심사위원회에서 개선 기간을 부여받았다.

이후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는 거래가 정지된 지 1년 8개월 만인 지난달 18일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영업 측면에서 기업 존속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신라젠은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는데, 특례상장 기업은 6년 차부터 연간 매출 30억원 이상을 달성해야 한다. 만약 매출이 30억원이 넘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설 연휴와 연초 주요 일정 등을 고려하면 다음 달 최종 상폐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자사 자금관리 부서 팀장인 이모씨가 2215억원을 빼돌리며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3일 거래가 정지됐다. 현재 그중 335억원을 회수한 상태다. 거래소는 오스템임플란트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심사하고 있다.

실질심사 여부는 오는 17일 나올 예정이다. 거래소가 심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이튿날부터 즉각 거래가 재개된다. 반면 심사 대상으로 지정되면 신라젠과 마찬가지로 기심위 심의 대상에 들어간다. 기심위는 기업의 증권시장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법원으로 치면 2심 판결에 해당한다.

만일 상장폐지를 결정하면 코스닥시장위원회로 넘어가 20일간 재심의를 받는다. 코스닥시장위원회가 개선 기간을 부여하면 최종 판단은 내년으로 연기된다. 이 경우 거래 정지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설사 거래가 재개되더라도 기업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만큼 주가 하락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현재 오스템임플란트 가격에는 횡령 사건과 관련한 리스크가 반영돼 있지 않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오스템임플란트의) 기업 영속성, 투자자 보호 등을 고려하면 상장 폐지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감시 시스템 미비로 인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 낮아진 회사 신뢰도로 인한 주가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해는 모두 소액주주들의 몫이다. 돈이 묶인 투자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신라젠의 소액주주는 17만4186명, 오스템임플란트의 소액주주는 1만9856명에 달한다. 각각 총 발행 주식 92.60%, 55.6%가 소액주주의 몫이다.

신라젠과 오스템임플란트는 다수의 패시브 상장지수펀드(ETF)에 편입됐을 정도로 코스닥 우량 대형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라젠은 2017년 11월 당시 시총 8조7115억원 규모의 시장 2위 유명기업이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8일 현재 2조386억원으로 코스닥 시총 15위에 해당한다. 두 회사에서 발생한 횡령·배임 사건이 코스닥시장 전체의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힌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신라젠 주주연합 회원들이 거래재개를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불공정 행위에 제도적 허점도 지적

신라젠과 오스템임플란트 사태에서는 제도적 허점이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라젠은 2016년 코스닥시장 입성 당시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활용했다. 기술특례 상장은 자기자본이 적거나(10억원 이상 허용) 적자를 내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 기술기업이 증권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 제도다. 기술력과 별개로 상용화가 여전히 불투명했다는 점, 이미 경영진의 횡령이 발생한 때였다는 점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성토가 일고 있다.

신라젠 소액주주 연대 관계자는 “신라젠은 상장 이전에 발생한 혐의로 거래가 정지된 것”이라며 “상장 전 혐의는 신라젠의 현재 재무상태에 추가 손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상장 이후 감사의견 ‘적정’에도 이 같은 상폐 결정은 매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개인투자자로서 상장 이전에 발생한 혐의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겠냐는 취지의 비판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이상한 자금 거래를 추적하는 금융정보분석원(FIU)도 공시 후에야 해당 내용을 수사기관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당국이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 현행 시스템이 문제로 떠올랐다. 당국이 사건을 인지할 수 있도록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은 최근 코스닥 기업들에 발생한 연이은 사고와 분리해 보기 어렵다”며 “코스닥150에도 포함됐던 시장 대표주에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며 시장 신뢰도가 크게 훼손됐다. 내부통제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로선 보다 까다롭게 투자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올해 들어 코스닥시장에서만 2조976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투자자들은 코스닥 우량주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뒤늦게 공개되고, 장기화한 점을 비판하며 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코스닥에서 잇달아 터진 사고가 하락장에서 가속페달을 밟게 했다”며 “증시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주가 하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코스닥의 내부통제 시스템, 경영진의 도덕성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금융 당국과 거래소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관리·감독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개인투자자의 코스닥시장 참여가 저조해진 정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달 코스닥시장 개인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전월(11조2228억원) 대비 16.5% 감소한 9조3682억원이었다. 월간 기준 2020년 3월(8조3956억원) 이후 최소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사후 규제 강화가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범정부 차원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엄단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실장실장은 “코스닥시장에 대한 낮은 신뢰도에는 고질적인 불공정 행위도 한몫했다”며 “보다 강력한 불공정 행위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