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샵 거친 사진입니다’…英 보정표시 의무화 통과될까

입력 2022-02-02 05:00
게티이미지뱅크

영국 의회에서 SNS에 몸매를 보정한 사진을 올릴 때 ‘보정된 사진’임을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 12일 발의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와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도 “SNS 여신들 퇴출당하는 것인가”, “가짜 몸매라고 직접 표기해야 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디지털상 변형된 신체 이미지(Digitally Altered Images Bill)’라고 명명된 이 법안은 영국 보수당 하원 의원 루크 에반스가 발의한 법안이다. 인플루언서들이 SNS에 올리는 완벽한 몸매 사진에 영향을 받는 젊은 세대들이 신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다.

법안을 발의한 에반스 의원은 성형외과 전문의 출신이다. 그는 지난 13일 의회에서 법안을 발의하며 “영국에서는 125만명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어떤 운동을 해도 ‘화면에서 보이는 것만큼 완벽한 몸’을 실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플루언서들이 올리는 사진들을 보며 완벽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적 강박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어 “인플루언서들의 사진 보정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신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보디 포지티브(내 몸 긍정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법안의 궁극적 목적을 설명했다. 법안이 통과되며 사회의 인식이 바뀐다면 광고주, 방송 관계자들, SNS 인플루언서들이 굳이 체형을 보정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3일 디지털상 변형된 신체 이미지(Digitally Altered Images Bill) 법안을 발의한 루크 에반스 의원. 영국 의회 캡쳐

지난 13일 법안 발의 단계인 1독회(1R·1st Reading)를 거쳤고, 오는 2월 25일 2독회(2R·2nd Reading)를 앞두고 있다. 2독회에서는 위원회에 회부하기 전 제안설명과 법안 담당 정부 장관, 대변인, 의원 등이 모여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토론을 거쳐 법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표결을 통과한 법안만이 상임위원회로 넘어가 논의된다. 에반스 의원은 지난 2020년 9월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는데, 당시 2독회의 표결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에반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BodyImageBill이라는 해시태그로 트위터 등에서 공유되며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법안 홍보를 위해 에반스 의원은 영국의 국민 청원 사이트에 해당 내용을 직접 게시했다. 노르웨이에서 지난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을 겨냥해 지난 25일 노르웨이 대사를 만나 관련 내용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는 등 법안 홍보를 위해 다양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국의 유명 록 밴드 더 뱀프스(The Vamps)의 멤버 제임스 멕베이는 본인의 SNS에 해당 법안을 발의한 에반스 의원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중에 비치는 완벽한 몸매에 대한 강박 때문에 식이 장애를 겪었던 경험 등을 털어놓았고 영국 TV 토크쇼 ‘Loose women’에 출연해 신체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당 법안에 응원을 보태고 있다.

영국 tv 프로그램 'Loose Women' 방송 화면 캡쳐

에반스 의원의 법안을 지지하는 영국 누리꾼들은 “이런 법안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이 법안이 꼭 필요하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은 어떤 이미지가 편집된 이미지인지 알 권리가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를 지지하고 있다.

앞서 노르웨이에서는 지난해 6월 비슷한 법안이 통과됐다.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인스타그램 등 사용자의 SNS 피드에 노르웨이 법의 적용을 받는 게시물만 노출되는 것이 아닌데,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영국에서 법안이 통과된다면 영국 광고 규제 기관 ASA(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수립하게 된다. ASA는 영국의 모든 미디어 광고에 대한 독립 규제 기관이다. ‘보정된 사진’임을 나타내는 표기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상업적 목적’ ‘신체를 편집한’ 기준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방침을 내놓을 전망이다.

에반스 의원은 ‘디지털상 변형된 신체 이미지’ 법안도 기타 상업 광고 표시 방식과 비슷하게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튜브에 영상을 게시할 때 저작권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체크하는 기능이나, 비디오게임에 ‘실제 장면이 아닌 비디오 게임 상황임’ 등을 표기해야 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대가를 받고 기업 제품과 관련된 게시물을 SNS에 올릴 때 ‘협찬’ 표기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신체 이미지 변형 여부를 표기한다는 방침이다.

천현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