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세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돼요”(통제구역 근무 경찰관)
밤새 내린 눈이 이슬처럼 도로 위로 녹아들던 임인년 새해 첫 아침. 붕괴사고 발생 22일째에 접어든 광주 화정아이파크 현장은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휙’ 소리를 내며 거세게 불었다.
‘유배의 땅’처럼 사방이 통제된 신축 아파트는 을씨년스런 겨울 날씨 속에 속살을 드러내야 하는 ‘대역 죄인’이었다.
미명이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10분쯤 키가 큰 외국인 근로자 10여 명이 붕괴사고가 난 201동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던 이들은 낯선 방문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서로에게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선 잠시 후 대형 서치라이트가 대낮처럼 훤히 몸체를 비추는 붕괴건물 고층부.
배고픈 야생동물이 할퀴고 간 사체처럼 여기저기 마구 뜯겨진 그곳에서는 여전히 119 구조대원과 막 교대한 근로자 등이 매몰·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동안 실종자 흔적을 발견하고도 왜 그렇게 구조작업이 더디냐는 성토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나 도무지 삽질을 멈출 수 없었다.
평소라면 가족과 모여 설 명절 차례를 준비하거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국을 끓일 시간이지만 구조 작업자에게는 호사스러운 남의 얘기로 들릴 것이 분명했다.
실종·매몰자를 찾지 못한 가족들의 처지는 더 궁핍하다. 3주 넘게 비닐 천막을 지켜온 가족들은 이제나저제나 구조 소식을 기다리느라 명절은 꿈에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24시간 수색이라고 거창하게 언론 홍보만 했지. 도대체 저 안에서 뭘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가족 모임 대표).
가족들은 명절 하루 전인 31일 구조대원들에게 피로 해소제를 건네며 ‘무한 신뢰’한다고 했지만 답답하게 진행되는 구조작업에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붕괴사고로 인한 실종자 6명 가운데 지금까지 행방을 찾아낸 것은 절반인 3명.
사고 직후 연락이 끊긴 2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수습됐고 1명은 위치가 파악됐지만, 온몸이 시려오는 콘크리트 잔해에 여전히 묻혀 있다. 그나마 나머지 3명은 아직 행방조차 묘연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가 한 달 가까이 천막에 머물러온 가족들은 조상님께 빌어서라도 사라진 남편과 아버지를 찾게 되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생계를 꾸리던 가게가 부서지고 단골을 잃게 된 인근 상인들도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 매몰·실종자 구조작업이 우선이라는 데 공감하지만, 배후에 가려진 그들의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고를 낸 시공사는 569자 분량의 짤막한 대표이사 사과문과 회장 퇴진 이라는 면책성 회피 외에 뚜렷한 참회가 없다.
오히려 ‘헬기가 부딪쳐도 멀쩡했던 명품 아파트’라며 재건축 수주전에 몰두한다는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왔을 뿐이다.
안양 관양현대 재건축 공사를 따내기 위해 2013년 삼성동 아이파크 24~26층에 충돌한 뒤 추락한 헬기사고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법정 소송에 대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다.
“저게 말이나 되는 거야. 현대산업개발은 애초부터 ‘속전속결’ DNA만 가진 몰인정한 기업 아니야? ‘대리 시공’부터 ‘부실 양생’까지 해오던 대로 한 거지. 도대체 구조작업은 언제 끝나고 철거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광주시민)
지난해 6월 17명이 숨지거나 다친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6개월여 만에 신축 아파트 건물 16개 층이 ‘와르르’ 무너진 사고현장을 지켜보는 광주 시민들의 심경은 타들어 간다.
광주의 관문이자 도심 한복판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휑한 건물을 앞으로 언제까지 마주해야 할지 언짢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급해서라도 책임자를 정말 따끔하게 처벌해야 돼.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또 콘크리트를 냅다 쏟아부으니 아무리 비싼 아파트라도 무너질 수밖에...”(터미널 찾은 성묘객)
민족 대명절을 쇠기 위해 붕괴사고 아파트와 맞닿은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을 분주히 오가는 많은 성묘객도 고향 광주의 ‘망가진 마천루’를 그 어느 때보다 씁쓸하게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지난 2019년 4월 아파트 705가구, 오피스텔 142실을 짓겠다며 2735억 원에 HDC 그룹 계열사 HDC 아이앤콘스로부터 시공권을 따낸 현대산업개발.
이후 2년 9개월여 동안 누적된 안전관리 소홀로 모두가 새해의 소망을 다지는 설날 아침까지 광주시민과 전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기어코 마지막 한 명까지 구조하겠다는 구조대원의 결연한 의지가 헛되지 않도록 시공사는 진정한 반성과 함께 사고 재발 방안을 세워 사옥 현관에 오롯이 새겨둬야 한다면 혼자만의 과도한 발상일까.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