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수사 등 자기편 권력 비리 수사를 맡고 있는 저에게 보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동훈(49·사법연수원 27기)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은 지난 27일 서울서부지법에서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유 전 이사장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2019년 말 노무현재단 계좌를 추적하고 자신을 뒷조사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고,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한 부원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 부원장은 법정에 나오면서 현재까지 추진된 검찰개혁을 ‘사기’로 말하는 등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2020년 초 대검을 떠나 지방으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옮긴 그는 여론이 집중되는 검찰의 수사에 한동안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돌이킬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다. 또 검사로서는 드물게도 일반 대중이 이름을 기억하는 검사가 돼 있다. 이날 한 부원장이 작심하고 한 발언은 언론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검찰이 진행한 수사에 대한 여론이 그렇듯 한 부원장에 대한 태도도 찬사부터 비난까지 다양했다.
그의 법원 출석 옷차림마저 화제가 된 데서 알 수 있듯 한 부원장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31일 한 부원장을 인터뷰했다. 한 부원장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시민과 검사의 입장에서 최대한 답변했다. 때로는 언사가 거칠었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 공개해 달라고 했다. 그는 검사로 살며 진영의 유불리를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 입문 여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생겼다는 말에 그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아직 검사다”고 답했다.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수사에 관여할 때보다는 일과가 한가한가.
“제가 하던 수사와 무관한 업무이지만, 사법연수원은 법관연수 등 법원의 중요 업무를 하는 곳이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27일 “사냥개 같은 검찰을 만드는 걸 검찰개혁이라고 사기쳐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했다. 지금 검찰개혁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을 예로 들 수 있나.
“반대로 묻겠다. 조국 사태 이후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불거진 권력형 비리와 대형 경제 비리 의혹들에 대해 ‘진짜로 책임있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민들이 분노한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LH, 월성, 울산, 대장동, 성남FC 등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보라. ‘조국 사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드라마틱하게 다르다. 대한민국이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갑자기 “권력비리가 ‘짠’ 하고 사라진 나라”가 된 것인가, 아니면 “권력비리 수사를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인가. 많은 상식 있는 국민들은 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라를 이렇게 후지게 만들어 놓은 걸 국민들이 왜 ‘검찰개혁’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그리고 또다시 검찰개혁하자고 떠들던데, 자기들 계획대로 “권력비리 수사를 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 검찰개혁에 성공해 놓고 이제 무슨 검찰개혁을 또 하나.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으로 일하며 여러 권력형 비리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뒤, 4차례에 걸쳐 좌천을 당했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도 받게 되었다. 혹자는 지금도 거론되는 여러 사건 수사가 아니었다면 좌천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거론되는 사건들의 수사 지휘를 후회하는가.
“후회는 당연히 없다. 인사권을 가진 권력과 국민의 이익이 배치될 때, 힘들고 손해보더라도 국민 편을 들라고 이 나라 법과 국민들이 검사에게 신분보장도 해 주고 존중도 해 주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지금 지방으로 뿔뿔이 좌천되어 매주 고속버스 타고 올라와 재판 들어가 고생하는 조국 수사팀, 울산 수사팀, 월성 수사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직자는 ‘쪽팔리게’ 살면 안된다. 공직자가 할 일 하다가 권력에 찍혀 겪는 부당한 일들도 국민 세금으로 받는 월급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처럼 사약을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추미애씨(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같은 분들은 ‘역모’니 뭐니 황당한 소리 하며 아직 조선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한동훈 검사는 검사들 틈에서도 수사의 전문가로 통해 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거친 수사 방식을 지적하는 말도 있던 편이다.
“검사로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진영이나 개인의 유불리를 가리지 않았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중대 범죄에 대해 서민의 범죄보다 더 엄격하려고, 힘들어도 물러서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직 운동장은 약자에게 기울어져 있고, 세상에는 ‘센 사람’ 봐주려는 사람 천지라서 나라도 그러지 말자는 단순한 결심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그게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권력비리 수사가 거칠었다는 애매모호한 말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중 서민이나 약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진짜 힘 있는 강자의 범죄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상대나 비호세력으로부터 권력이나 여론을 동원한 음해와 비방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 외적 공격을 이겨내면서 수사하려면 수사가 더 촘촘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수사하면서 정답을 내지 못한 경우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정답이 아니었던 경우라면 그건 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지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해 오면서 외압을 받은 적이 있었나.
“당연히 있다. 권력 비리 수사에 있어서 외압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다. 수사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해서 징징대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사해 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사표를 쓰면서 버틴 것만 세 번이다.”
-수사를 하면서 외압이나 청탁을 들어준 적이 있는가.
“없다. 조국 사태 이후 최근 2년 반 동안 내가 맡았던 과거의 사건들이 들춰질 것이라고 주위에서 걱정했다. 흠을 잡아 문제로 엮을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수사하면서 혹시라도 변호사의 청탁을 받아준 적이 있는지, 강자와 타협한 적이 있는지,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받아준 적이 있는지 하나하나 20년 검사 생활을 자기검열해 봤다. 그런 것 없었다. 이 정권이 탈탈 털어 뒤져봤겠지만 그런 것은 없었을 거라 자신한다. 있었으면 침소봉대해서 흔들어 댔을 것이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논쟁의 대상이다. 국가를 위해 과연 기여했느냐는 질문에도 직면한다.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으로 ‘운동권동우회’와 ‘검찰동우회’를 들었는데, 이 가운데 운동권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감옥에 가는 희생을 겪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비교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다만 관련해서 시민으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이 엄혹한 시절 보여준 용기를 아주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이분들 중 ‘일부’가 수십년 전의 일을 가지고 평생, 대대손손 ‘전 국민을 상대로 전관예우’를 받으려 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들며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일부 분들은 수십년간 유력 정치인, 공직, 기업인, 시민단체 등으로 충분히 보상 받았고, 이미 수십년째 기득권 아닌가. 그 시절 나름의 방식으로 큰 용기를 낸 더 많은 국민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이렇게 평생 써먹었던 청구서를 다시 들이밀면서 사골처럼 우려먹으려 하지는 않는다. 진짜 그 시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헌신한 분들은 저러지 않을 거 같고, 국민들이 진짜 존경하는 건 그런 분들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현재 ‘한동훈’은 검사로서는 흔치 않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인사가 되었다. 본인이 일축한 바도 있지만, 대중은 정치권 입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 상황을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정당하게 할 일을 한 공직자가 부당한 권력의 탄압에 타협하고 항복하는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울 뿐이다. 대한민국 시스템 내에서 힘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대한민국의 시스템과 국민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다. 정치 입문 여부를 묻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생각이 없다. 검찰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직 검사다.”
-검사로서는 드물게 팬클럽도 있다. 숫자도 상당하다 하던데.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검사의 일인데 국민들이 검사를 걱정해 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분들의 선의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권력의 잘못을 비판하고 거기에 공감하는 뜻이지 나 개인에 대한 호감은 아닐 테니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사지휘 일선에서 물러난 뒤 정부의 정책, 법원의 판결, 장관의 입장 등에 대해 활발하게 입장을 표명해 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안의 진위를 놓고 다투는 모양새도 피하지 않았다. 이 같은 활발한 입장 표명의 이유는 무엇인가.
“할 일 하다가 부당한 표적수사와 사찰을 받은 당사자로서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허위 비방하고 공작하는 쪽에서는 권력자들, 어용 지식인들, 어용 언론들이 없는 말 지어내 퍼뜨리는데, 피해 당사자로서 아무 말 안해서 현혹당하는 국민들이 생기도록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그냥 넘어가면 다른 국민들을 상대로 또 이럴 것이다. 그리고 장관이든 정부든 명백히 권력이 헌법이나 국민 무시하고 잘못하는 경우에, ‘당연히 말해야 할 때 당연히 말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몸 사리고 입 꾹 닫고 숨으니, 나라도 나서서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게 민주주의고 법치주의”라고도 말했다. 본인도 현재 서울중앙지검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피의자로 입건한 사건들이 있다. 위 발언은 공직자 한동훈에게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인가.
“그건 누구에게도 적용되는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나 공수처의 문제는, 죄가 아니라 ‘수사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수사의 강도, 결론이 100퍼센트 예상된다는 것이다. 정말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권력, 어용 세력들로부터 없는 죄도 만들어 보려는 일들을 계속 당해왔다. 아시다시피, 그런 일들은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죄가 없기 때문이다.”
한 부원장이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던 날 오전 대법원에서는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됐다. 검찰의 수사 착수 2년 5개월 만이었다. 한 부원장은 수사팀을 대표해 “2019년 8월 이후 오늘까지 더디고 힘들었지만 결국 정의와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진실은 하나이고,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결과를 위해 아직 갈 길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언론에 때로 입장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 “나중에 누가 돌이켜 살필 때, ‘그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었구나’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한 부원장은 법정에 나올 때 이미 많은 말을 했다며 처음에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거듭한 요청에 응했다. 정치적인 말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답변에 대해서도 “시민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며, 말하는 김에 다 말하려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한 부원장의 미래를 궁금해 하고 있다. 그는 검찰에서 더 할 일이 있을 것이며, 본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곧 수그러들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