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컬렉션 매각 이번이 마지막일까…공공재화 고민해야

입력 2022-01-30 14:56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 어렵게 구입한 국보 불교 유물 2점이 후손에 의해 경매에 나와 또다시 유찰되면서 이것이 전례대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안길지 주목된다. 아울러 되풀이되는 경매 출품의 배경으로 간송 후손이 언급한 재정난에 대한 근본적인 타개책으로써 간송 컬렉션을 공공재화하는 논의가 이참에 본격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옥션 경매 장면.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30일 “간송 측에서 (구입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오면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게 박물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K옥션 경매에서 간송 후손이 내놓은 ‘금동삼존불감’(추정가 28억∼40억원)과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추정가 32억~45억원) 등 국보 2점이 모두 팔리지 않았는데,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이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2020년 5월에도 간송 집안이 K옥션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이 각각 추정가 15억원으로 나왔다가 모두 유찰됐고,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원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사들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품 가운데 통일신라시대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통일신라시대 금동약사불입상(보물)을 보유하는 등 복보 109건 중 47건, 보물 297건 중 116건이 불교 유물인 것으로 집계된다. 국보 보물 가운데 불교 유물이 수량으로는 적은 게 아니다. 하지만 간송 집안에서 이번에 팔려고 내놓은 국보 2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탐낼 만한 미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계미명금동삼존여래입상은 한 광배 안에 주불상과 양쪽의 보살이 모두 새겨진 삼국시대의 일광삼존불 양식인데, 광배 뒷면에 ‘계미년’(563년 추정)이라고 새겨져 있다. 명문이 있는 일광삼존불은 국내에서 신묘명금동삼존불입상 등 5점이 채 안 되며 이 중 계미명의 상태가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동삼존불감은 고려 11~12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웅전 형식 안에 삼존불을 모신 것으로 고려시대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고려 공예미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금동삼존불감

간송 측은 불교 소장품의 경매 출품을 재정난에 따른 구조조정 차원으로 해명한다. 간송 측은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난 입장문을 통해 “재정적인 압박으로 불교 관련 유물을 불가피하게 매각하고 서화와 도자, 전적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문화계 인사는 “어떻게 서화, 전적만 가지고 미술관이 될 수 있냐. 골고루 소장하고 있어야 박물관이지”라면서 “구조조정은 핑계일 뿐이다. 선대에서 애써 모았으면 그걸 유지하려고 노력해야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간송 후손의 소장품 매각 시도가 불교 미술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간송문화재단은 재정이 들어가는 신사업으로 성북동 신수장고, 대구간송미술관, DDP 전시사업 등을 언급하고 있지다. 하지만 이 모두 정부나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서 이루이는 사업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짓고 있는 수장고는 올해 3월 완공 목표로 국비와 지방비(서울시) 총 64억7000만원이 들어간다. 대구간송미술관 역시 2023년 7월 준공 목표로 국비와 지방시(대구시) 400억원이 투입됐다. 간송미술관이 2014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에 맞추어 진행한 DDP 전시 역시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전시시설 및 부대장비, 전시 운영관리( 국보 등 특수보안 포함), 교육 홍보 등을 맡았다. 서울디자인재단은 국가와 시를 대신해 초기 공간 구축과 시설 투자비용 등으로 총 70억원을 들였고 협정에 따라 입장 수입 75%가 간송에 배분됐다. DDP 전시 그 자체로는 간송 측에 재정적 압박 요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DDP 전시는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 차례 보름씩만 전시를 열어 소장품을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간송이 처음으로 외부 전시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간송 측은 DDP 전시나들이를 통해 수익 창출에 대한 큰 기대를 했지만 5년간 13회의 간송문화전 전시에는 70만명이 입장하는데 그쳤다.

간송은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 일대 상권을 장악한 대부호의 상속자였다.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고려자기와 조선백자 등 소중한 유물들이 일본 등지로 마구 팔려나가던 시절이었다. 간송은 오세창의 수집 권유에 따라 애국적 행위로 수집에 나섰다. 전답을 팔면서까지 서화와 도자기 등을 사모았고, 국보 12점, 보물 32점 등 문화재 2만여 점이 간송에 의해 지켜졌다. 그가 1937년 최초의 사설 박물관인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을 설립하자 당시 문화계 인사였던 오봉빈은 간송 전형필의 박물관 개설을 전문학교나 대학을 창설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간송 컬렉션은 간송 사후 장남 전성우를 거쳐 현재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물려 받아 관리하고 있다. 2013년 간송문화재단이 설립돼 상당수 유물이 재단에 귀속됐지만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는 대부분 간송 집안 개인 소유로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간송 집안은 국보굽 유물을 갖고 있지만 이를 유지 관리할 뚜렷한 수입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학인 보성고등학교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라 재정적인 자립기반이 취약하다. DDP 전시는 전시 수입에라도 의존해야 하는 간송 집안의 재정 압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 문화계 인사는 “간송 후손이 컬렉션을 운영 관리할 여력 없다면 이제 간송 집안과 국가가 대승적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간송 측에 반대급부를 주고 국가가 유물을 관리하는 타협책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문화계 인사는 일본의 아타카(安宅) 컬렉션의 시 기증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타카컬렉션은 아타카산업(安宅産業)주식회사가 수집한 중국도자 144건과 한국도자 793건을 중심으로 한 약 1000점이 넘는 동양도자컬렉션으로 이뤄져 있다. 국보2점과 중요문화재12점이 포함돼 세계적으로도 평가가 높았다. 하지만 아타카산업이 파탄나면서 그 컬렉션은 주력 은행에 의해 오사카시에 기증되어 현재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