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수상한 자전거 떨쳐준…“같이 걸어드릴까요?”

입력 2022-01-28 17:00 수정 2022-01-28 17:00
안심귀가서비스를 진행하는 스카우트들의 모습. 노혜진 인턴기자

“저, 집까지 같이 걸어드릴까요?”
“네! 이렇게 만나서 너무 다행이에요….”

서울 송파구에서 활동하는 안심귀가 스카우트 대원 이현숙씨와 김정임씨(가명)가 운동복 차림으로 혼자 걷는 젊은 여성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씨가 집까지 함께 가 줄지 물어보니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를 너무 반기길래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자전거 탄 이상한 남자가 자꾸 자기를 따라왔다는 거예요. 자기가 서면 남자도 서고, 자기가 가면 남자도 뒤따라오고…. 그러던 중에 저희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24일 현장에서 만난 이씨와 김씨가 지난 여름 있었던 일이라며 들려준 얘기다. 두 사람은 홀로 어두운 골목을 걸어 귀가하는 여성과 청소년의 든든한 동행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씨는 벌써 2년째, 김씨는 1년째 안심귀가 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안전한 귀갓길을 만들기 위해 매일 밤 골목 구석구석을 순찰하고 안심귀가서비스 신청자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이 같은 안심귀가서비스는 어떻게 진행될까? 인턴기자 5명이 직접 스카우트 대원과 동행해 봤다.

스카우트 근무 현장 따라가 보니
안심귀가서비스 순찰에 나선 스카우트 대원들. 손에는 빨간 봉이, 가방 한 켠엔 지도와 안심귀가서비스 팸플릿이 가득했다. 노혜진 인턴기자

지난 24일 저녁 9시 50분, 안심귀가서비스 동행을 위해 서울 송파구 방이지구대에 집결했다. 지구대 앞에는 노란 모자를 쓰고 조끼를 입은 스카우트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를 만난 스카우트 대원 박태연(가명)씨는 팸플릿을 나눠주며 “원래는 퇴근길에 주기적으로 이용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서비스 이용률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순찰은 방이지구대를 시작으로 방이 시장을 거쳐 지구대에 복귀하는 경로였다. 안전을 위해 스카우트 대원은 2인 1조로 활동한다.

길 곳곳에 설치된 안심벨과 CCTV. 노혜진 인턴기자

처음 향한 곳은 학원가. 길 곳곳엔 ‘여성안심귀가’라는 글귀를 비롯해 안심벨과 CCTV가 눈에 띄었다. 이내 도착한 학원가에는 수업이 끝난 학생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차로 가득했다.

스카우트 임현희(가명)씨는 “요새는 날씨도 춥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부모님들이 픽업을 많이 오시지만, 원래는 (학원가 근처에서) 30분 정도 대기하며 혼자 귀가하는 학생들을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설명했다. 송파구청 측도 “안심귀가 서비스의 주 이용자는 10대~20대 여성이지만, 10대 남자 학생이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루트가 짜여진 순찰 지도. 노혜진 인턴기자

학원가 순찰이 끝난 후에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순찰을 진행한다. 순찰 경로는 학교 앞, 어두운 골목길 등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임씨는 “특정 코스대로 순찰하도록 되어있다”며 “매일 다른 곳을 다니면 눈에 띌 확률이 적기 때문에 매번 같은 코스로 순찰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순찰하며 술 취한 사람을 인계하는 등 귀갓길에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집중적으로 확인한다. 박씨는 “순찰하다가 공원에 술 먹고 취한 사람들이 있어서 경찰에 인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순찰을 돌다 만난 시민에게 '여성안심귀가서비스'에 대해 소개하는 스카우트 대원의 모습. 노혜진 인턴기자

대원들은 부모들 사이에서 ‘여성안심귀가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특히 딸 가진 엄마들이 ‘이런 서비스가 있었냐’며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동행 중 만난 10대 이용자도 “처음 이용해봤는데 좋은 제도인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해진 경로대로 순찰을 마친 스카우트 대원들은 지구대로 복귀해 순찰 내용 등을 담은 일지를 작성하고 순찰을 마무리한다.

‘안심귀가서비스’ 직접 신청해보니

'안심이'앱에서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신청하는 모습(왼쪽)과 신청이 완료된 사진(오른쪽)

오후 9시 30분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안심이’ 앱을 켰다. 10시쯤 지하철역에 도착할 예정이라 10시 10분에 맞춰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신청했다. 내리는 역과 스카우트 대원을 만날 시간을 입력하니 간단하게 신청이 완료됐다. 10시쯤 스카우트 대원에게 확인 연락이 왔고, 역에 도착하니 노란 조끼를 입고 붉은 야광봉을 든 스카우트 대원 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안심이 앱에서 ‘출발하기’ 버튼을 눌렀고, 목적지를 향한 스카우트 대원들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깜깜한 골목길의 모습. 한제경 인턴기자

스카우트 대원들은 신청자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뒤에서 따라 걷는다. 먼저 스카우트 대원에게 말을 건네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역 앞을 환하게 비추던 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네다섯 개의 가로등만 켜져 있는 깜깜한 길이 펼쳐졌다.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 옆에 스카우트 대원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실제로 스카우트 대원들은 “우리와 동행하지 않더라도 노란 조끼를 입은 우리가 으슥한 길을 순찰하는 것을 보면 안심이 된다고 하는 여성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여성안심 귀갓길에 설치된 '솔라표지병'. 6시간 태양광 충전 시 약 40시간 발광하는 장치로 어두운 골목을 거쳐 귀가하는 여성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제경 인턴기자

걷다 보니 초록색 불빛이 바닥에 깔린 길을 나왔다. 스카우트 대원은 이곳이 심야 길목을 환하게 비추는 ‘솔라(Solar)표지병’이 있는 ‘여성안심 귀갓길’이라고 설명했다. 솔라표지병은 낮에 태양열을 축적했다 밤에만 빛을 발하는, 일종의 충전식 태양광 바닥조명장치다.

깜깜한 골목이었지만 솔라표지병이 내는 빛 때문에 그렇게 어둡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스카우트 대원 역시 “솔라표지병이 어두운 골목을 거쳐 귀가하는 여성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범지대나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적이 드문 길목에 지정되는 '여성안심 귀갓길'. 이곳에는 노면 표시와, LED 표지판, 조명등이 설치되며 솔라표지병이 설치된 곳도 있다. 현재 지구대는 여성안심 귀갓길을 집중적으로 순찰하고 있다. 한제경 인턴기자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는 안심이 앱에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감사 인사를 끝으로 스카우트 대원과의 약 7분간의 동행이 끝났다.

미심쩍은 순간, 스카우트가 있어 다행이었다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이용자 A씨는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생활 이후 스토킹을 당한 A씨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매일 규칙적으로 이용했다. A씨와 동행한 스카우트 대원 김씨는 “A씨가 스토킹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매일 귀갓길에 동행했는데 항상 우리에게 ‘스카우트 대원들이 계셔서 너무 든든하다’는 인사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스카우트 대원 박씨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불안에 떠는 여성을 집 앞 현관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스카우트 대원들의 선행을 알리는 따뜻한 사연이 라디오를 통해 공개된 적도 있다. 거여동을 순찰하던 박씨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집까지 동행했다. 박씨는 “따님분이 라디오에서 엄마가 성격이 까칠하신데 끝까지 데려다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면서 “우리는 구청에서 교육받은 대로 친절하게 모셔다 드렸을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이용자 수가 줄어들자 스카우트 대원들은 우범지역부터 어두운 골목 위주로 순찰을 돌고 있다. 김씨는 “우리 딸이 귀가하는 길에 어두운 골목을 순찰하는 스카우트 대원을 보고 든든하다고 말한 적 있다”면서 “스카우트 대원으로 직접 현장에 뛰어보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된다”고 전했다. 박씨는 “이용자분들이 따뜻한 음료수를 주기도 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면서 “정말 보람차다”고 말했다.

안심이 앱만 사용해도 OK
기자가 직접 이용한 안심이 어플 ‘귀가 모니터링’ 서비스의 신청 내역(왼쪽)과 보호자에게 보고된 내역(오른쪽).

홀로 귀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카우트 서비스까지 신청하기에 부담을 느낀다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안심이’ 앱에서 ‘안심귀가 모니터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안심이’ 앱은 2017년 5월 서울시 4개 자치구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18년 10월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됐다.

도착 목적지를 설정해 귀가 모니터링을 신청하면 관제 센터에서 이용자의 현재 위치부터 목적지까지 GPS 경로를 지켜본다. 안심이 앱 화면 내에도 이용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발걸음이 표시된다. 가입 시 이용자가 등록한 보호자의 연락처로 귀가 모니터링 서비스 이용 내역이 GPS 위치와 함께 즉시 발송된다.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앱으로 긴급신고를 할 수도 있다. 지구대·안전지킴이집·여성안심택배함 등 안심 시설물의 위치 정보도 제공된다.

좋은 제도인데, 더 알려졌으면
여성안심 귀가 서비스 제도는 2012년 6월 안산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됐다. 서울시에선 2013년 6월 시작됐다. 스카우트 제도는 사업을 시행 중인 각 지자체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와 동절기 등을 이유로 서울시 외 대부분의 지자체가 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서울시도 코로나19 이후 계속되는 거리두기로 심야 시간대 이동량이 급감해 예년보다 여성안심스카우트 이용자 수가 줄어들었다. 서울시 공공데이터에 집계된 이용실적을 살펴보면 2015년 23만3290명, 2016년 24만1838명, 2017년 32만2704명, 2018년 34만1162명, 2019년 35만5950명으로 서울시 전역으로 서비스가 확대됨에 따라 이용자도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에는 21만278명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다만 이 숫자는 안심이 앱 또는 다산콜센터(120)를 통해 신청한 경우 이용 실적에 반영, 집계된 것이다. 스카우트들이 현장에서 귀가 동행을 권유하는 경우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야 시간대에 스카우트들이 어두운 골목길을 순찰하는 것만으로도 주민에게 심리적 안심을 주는 효과가 있기에, 꼭 필요한 주민 안전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사업 담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성안심스카우트 사업은 각 자치구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을 배정받아 진행한다. 송파구의 경우 2019년 1억5744만원, 2020년 2억322만원 2021년 2억4503만원을 지원받아 스카우트 대원 인원을 15명, 18명, 22명으로 해마다 늘릴 수 있었다. 이용 실적 등에 따라 자치구별로 배정되는 예산이 다르다 보니, 사업 지속성에서 일부 차이를 보인다. 송파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치구 내 12개 동 모두에 스카우트를 배정해 사업을 이어갔지만, 강북구는 이용자 수 급감으로 1월 사업 마무리를 결정했고, 3월부터 사업 재개에 나설 계획이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홍보가 정말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처음에는 우리가 다가가는 걸 이상하게 보는 여성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설명해 드리니 ‘너무 좋은 제도’라면서 다음에 만났을 때 인사도 먼저 해 주시더라”고 말했다.

임씨도 “이 좋은 제도가 홍보가 안 돼서 폐지되면 너무 아쉽지 않나”면서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른다. 널리 알려져서 많은 분의 안전한 귀갓길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노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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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