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거 아닌데”… 정치 음모론에 선긋는 백신 미접종자들

입력 2022-01-31 06:00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의 주장이나 음모론을 강화하는 소재로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들의 목소리가 활용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건강 등의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것인데, ‘4·15 총선 부정선거’ 주장 같은 정치적인 의혹 제기와 한데 묶여 취급되는 것이다. 백신 미접종자들은 서둘러 선 긋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 28일 한 인터넷 쇼핑몰에는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손수건이 판매 중이었다. 가로 32㎝, 세로 22㎝ 크기의 녹색 천에 ‘백신패스 결사반대’ ‘국민을 개돼지로 보나’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있다. 1장 가격은 1800원이었다.

판매자는 2만3000여명이 가입한 ‘백신 반대 운동’ 카페의 운영자 A씨다. 그는 지난달 이 카페에 올린 판매 안내 글을 통해 손수건 3000장을 자비로 먼저 제작했다며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현장 시위 때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쇼핑몰에서는 손수건뿐만 아니라 ‘4·15 부정선거’ ‘문○○(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 등의 문구가 들어간 에코백과 스티커도 판매되고 있었다. 동시에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도 백신 접종과 방역패스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기보다 ‘4·15 부정선거’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적 메시지들이 주를 이뤄갔다. 지난해 7월 카페 개설 당시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의도치 않게 특정 정치적 주장과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 미접종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토로한다. 백신과 관련된 주장에 일부 정치적 견해가 포함되더라도 부정선거를 외치기 위해 카페를 찾고, 손수건을 구매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약물 부작용에 접종을 미룬 이모(36)씨는 “내가 어느 순간 2020년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말하는 동조자가 되어 있더라”며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백신을 안 맞은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방역패스로 일상을 옥죄는 정부도 문제지만, 미접종자를 이용하는 정치세력은 더 싫다”며 “다른 미접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입한 카페도 가짜뉴스로 넘쳐나 이젠 접었다”고 씁쓸해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시민이 QR코드 체크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방역패스 정책에 반대하지만, 음모론에 휩싸인 정치세력은 극히 사양한다” “정치 성향을 들이대는 게 백신을 강요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적인 반응이 많다. 공감대를 얻기 위해 가입한 커뮤니티가 ‘공해’로 느껴져 탈퇴한다는 이들도 쉽게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학적 사유건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건 스스로 근거를 가지고 내린 결정이 특정 정치세력에 이용당하면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소수자가 된 자신의 선택을 왜곡해 바라보는 해석에 대해선 더더욱 강하게 선 긋기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미접종자들의 사정을 과하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