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가스 끊으면 유럽은 어떻게 될까

입력 2022-01-27 16:57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스 공급 중단 시 가뜩이나 에너지 기근에 시달리는 유럽 경제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 가속 등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주요 수출시장을 잃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뉴욕타임스(NYT) 26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군대와 군사장비를 대규모로 배치하는 동안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비슷한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서방 관료들은 모스크바가 최후의 대응을 발표할 경우 어떻게 될지 숙고 중”이라고 전했다. 최후의 대응이란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필요한 한겨울 유럽에 가스와 석유 공급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NYT는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흐르는 천연가스는 유럽 전역의 가정과 발전소를 가열한다”며 “러시아는 유럽의 주요 석유 공급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유럽으로 보내는 자국산 가스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털마켓의 상품 부문 책임자 헬리마 크로프트는 “우리(서방)가 그들(러시아)을 자본시장 에서 내치려 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고통스러워 하는 분야인 에너지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의 갈등 시기가 세계적 에너지 공급난의 한복판이라는 점은 유럽의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석유·가스 공급이 수요 회복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 상황이다. 올겨울 유럽은 가스와 전기 가격 급등으로 이미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가스 저장량이 정상치를 크게 밑돈 유럽은 한참 비싼 가격으로 미국과 카타르 등지에서 가스를 수입 중이다. 현재 천연가스는 1년 전의 약 5배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최고점을 찍은 지난해 말에 비해서는 절반 정도 낮아진 가격이지만 미국보다는 7배가량 비싼 수준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신문은 “높은 가스값은 전기료를 올리고 소비자를 위협하면서 비료공장이나 금속제련소처럼 에너지에 굶주린 일부 공장을 임시 가동 중단으로 내몰았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가스 수출량을 줄이고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보유한 유럽 가스시설 저장 수준을 최저로 유지하고 있다. 한겨울 유럽의 에너지 불안을 가중시켜 우크라이나 사태에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유럽 천연가스 사용량의 약 3분의 1을 공급하는 러시아는 국내 생산량이 줄면서 공급원으로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의 3분의 1이 우크라이나를 통과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유럽도 부수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유럽 간 천연가스 무역을 연구한 저자 테인 구스타프슨은 “우크라이나 상황이 정말 엉망이 된다면 유럽이 지금 이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고 NYT에 말했다.

하지만 가스 수출업자인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유럽은 주요 수익원이라 섣불리 공급 중단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제에너지문제특사를 지낸 데이비드 골드윈은 “유럽이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반면 러시아는 유럽 시장 의존도가 높아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이 궁지에 몰렸다고 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가스 저장량이 줄고 가격은 올랐지만 아직 연료가 고갈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달 미국 등에서 액체 상태로 유조선에 실려 유럽으로 운송된 천연가스 규모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량을 넘어섰다. 유조선 한 채가 실어 나를 수 있는 액화천연가스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유럽으로 가는 일일 가스공급량의 3배라고 한다.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해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신뢰를 훼손한다면 유럽은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NYT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은)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길 수도 있다”며 “이는 러시아 경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