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레벨 없는 RPG 게임으로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게임, 일랜시아. 불법 매크로와 버그 때문에 게임 진행이 어려울 정도지만 운영진마저 떠나버렸습니다. ‘버린 자식’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남아있는 유저들이 있었죠. ‘내언니전지현’이라는 닉네임으로 20년 가까이 일랜시아를 플레이한 박윤진 감독은 그들에게 묻습니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박 감독은 이유를 찾기 위해 길드(온라인 게임 속 유저들의 모임) ‘마님은돌쇠만쌀줘’에서 함께 게임을 해 온 유저들을 찾아갑니다.
길드원들이 일랜시아를 하는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게임 속에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는 지역, 나이, 직업까지 모든 것이 달랐지만 일랜시아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일랜시아가 가장 먼저 생각났죠.
또 다른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였습니다. “마음 편하게 게임을 하던 그 때가 그리워서” “옛날처럼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랜시아를 놓지 못했습니다.
박 감독이 만난 길드원의 대부분은 20대 중후반입니다. 그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사회가 변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무한경쟁이 익숙한 세대인 것이죠.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는 청년을 ‘생존주의자’로 정의합니다. 청년들은 성공이 아닌 평범한 삶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달랐습니다. 길드원들에게 일랜시아는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끝없는 경쟁에 집중하는 사이 청년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청년일자리 인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취업난 속에서 구직활동을 하며 주로 불안, 무기력, 우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속 청년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일랜시아가 있었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망겜’일지라도 힘들 때면 일랜시아로 돌아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몇 년 동안 쉬더라도 다시 일랜시아에 돌아올 것 같아.”
누구에게나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바쁜 현실 속에서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일랜시아 같은 곳 말이죠. 잊고 있던 여러분의 일랜시아는 무엇인가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① 어린 시절 즐겼던 추억의 게임이 있다
② 지금도 게임을 좋아한다
③ 힘들 때면 생각나는 취미가 있다
④ 공감 100% 영화를 보고 싶다
김수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