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P는 어려서부터 너무 징징대며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였다. 까다로워서 익숙한 것만 먹고, 입고, 만지려 한다. 새로운 곳은 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더라도 엄마 주위만을 맴돌아 안타깝게 하였다. 그래서 P의 부모는 입학할 때도 걱정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학교 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였고, 심하게 울고 보채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를 않았다. 학교를 다녀오면 그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엄마에게 확인을 받곤 하였다. 의존적인 아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았고,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자책하게 되었다.
P와 같은 아이들은 감각 자체가 예민하다. 특히 촉각적으로 예민하여 옷의 라벨이 목 부분에 닿는 것을 싫어하고 본인이 익숙한 옷만 입고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모래가 발에 닿는 감각을 못 견뎌 모래를 털어내느라 놀이터에서도 까탈을 부린다. 놀이 공원에 가서 겁을 내며 놀이기구도 타지 못하고, 심지어 놀이터의 그네나 미끄럼도 타지 못한다. 촉각과 전정감각의 예민성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특성이 있는 아이들은 새로운 상황을 만날 때는 늘 긴장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을 부모가 미리 짐작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새로운 상황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미리 설명하고, 아이가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미리 관찰하게 하여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런 타고난 기질의 특성을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면 ‘까탈스럽고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라 생각되어 아이를 윽박지르며 화를 내거나 P의 부모처럼 자신의 양육태도를 탓하며, 자책감에 빠지곤 한다.
엄마는 P와는 전혀 다르게 무던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아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과잉보호로 아이가 이렇게 되었나 싶어 한번은 키즈 카페에 가서 아이를 무조건 적응하라고 들이 밀고 엄마는 몰래 숨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헌데 아이는 ‘얼음’이 되어 있던 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동물은 위험을 접하면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심장이 벌렁거리고 땀이 나고 동공이 확대되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 도망할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보다도 더 큰 위험을 감지하면 오히려 죽은 듯이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P가 그런 상태였다. 이 사건 이후로 아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이 심화 되었고, 더 엄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의 기질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런 시도를 하진 않았을 거다. 어떻게 아이의 기질을 파악할 수 있을까? 기질을 분류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클로닝거 박사가 제안한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아이의 행동을 4가지 요소로 평가 해본다.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지 낮은지, 새로움 추구가 높은지 낮은지, 보상의존이 높은지 낮은지. 지속성이 높은지 낮은지. P와 같은 유형의 아이는 특히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아이다. 그래서 5세 이전에 낯가림도 심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당황해서 쉽게 안정을 못 찾고, 쉽게 두려워하고, 자주 깜짝 놀라는 특성이 있다. 자녀의 기질과 함께 부모 자신의 기질도 같이 파악해야 부모 자녀간의 궁합을 알 수 있다.
P는 위험 회피 성향이 높은 반면 엄마는 위험 회피 성향이 낮은 활발한 성향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P를 이해가 힘들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 있는 경우다. P의 엄마는 아이가 몹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적응하는 속도를 맞추어 주며 작은 새로운 시도부터 해보도록 격려한다면 아이는 나이가 들수록 용감해지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힘든 기질의 특성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장점이 있다. 진화 심리학적으론 위험 감지에 둔감한 동물보다는 위험감지에 민감한 동물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한다.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니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특성도 같이 따라오게 되며, 현대 사회서 성공하기에 유리할 수도 있다. 불안만 잘 관리한다면 말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