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동유럽·발트해 파병 검토…대러 강경 대응 고개

입력 2022-01-24 10:03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유럽과 발트해 연안에 미군 파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방안이 승인되면 러시아 국경 인근에 미 병력이 직접 투입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지상군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미국 내부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선제 제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협상은 교착 상태인데, 러시아의 위협 수위는 높아지면서 기존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철수 명령을 내려 충돌 위기가 최고조로 올랐다.

바이든, 러시아 인접국에 파병 검토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발트해 연안과 동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수천 명의 미군과 군함, 항공기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전날 국방위 고위 관계자들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전략 자산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근처로 이동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해당 옵션에는 1000~5000명 수준의 군대를 동유럽 국가에 파병하는 안이 포함돼 있고, 상황이 악화할 경우 규모를 10배까지 늘리는 방안도 언급됐다고 한다.

NYT는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절제된 입장을 취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전환점”이라며 “행정부 관계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 주 관련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파병을 승인하면 일부 병력은 미국에서 직접 이동하고, 나머지는 유럽에 배치된 군의 배치 조정을 통해 합류할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미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 수위를 올리자 이 같은 전략 변화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CBS 방송 인터뷰에서 “외교를 하는 동안에도 국방과 억지력을 구축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 모든 것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선제 제재론 등 고개 드는 대러 강경책

미국 내부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의 병력 증강 자체를 위협으로 보고, 금융 제재 등을 먼저 시작해 러시아를 압박하자는 것이다.

미 상원 군사위 소속 조니 에른스트 공화당 의원은 이날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 군대와 장비가 집결하는 것은 일종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미국 대응은 매우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의원은 대응 형태에 대해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 시스템에서의 확실한 퇴출이든 노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에 대한 제재이든, 어떤 형태의 제재여야 한다. 이런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에 방어 능력뿐만 아니라 공격 무기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의원은 “침공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시점에서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결의도 보여줘야 한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너무 유화정책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푸틴 대통령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맥콜 의원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줄곧 (적들에게) 미국의 약세가 표출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올가미를 조이는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러 대응 형태를 ‘소극적 억지력’이라고 표현했다.

맥콜 의원은 그러면서 “지금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당장 강력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고, 그 영향은 전 세계적일 것이다. 행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맥콜 의원은 “중요한 것은 ‘억지’를 위한 메시지”라며 “푸틴에게 우리의 진지함을 보여주려면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 루마니아, 불가리아에서 합동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심각하게 여긴다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병력 증강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중국, 이란 등을 언급하며 “이번 사태는 광범위한 글로벌 파급 효과를 낼 것”이라고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러나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재를 억지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침공 전 제재를 가하면 억지 효과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러시아군이 한 명이라도 우크라이나에 진격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신속하고 가혹한 연합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소규모 침입’ 발언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우크라 주재 대사관 직원 가족 철수 명령

미 국무부는 이날 “비필수 업무를 하는 직원의 자발적 출국을 승인한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군사 행동 위협으로 키예프 소재 대사관 직원 가족들의 출국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미국인에게도 떠날 것을 권고했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중대한 군사행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경,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러시아가 통제하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안보 상황은 예측할 수 없으며, ​예고 없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가 미국 대사관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은 계속 운영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