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이 자국 대사관 직원과 가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미국 내부에서는 러시아에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선제 제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의 병력 증강 자체를 위협으로 보고, 금융 제재 등을 먼저 시작해 러시아를 압박하자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러나 외교적 해결이 우선이고, 선 제재는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 상원 군사위 소속 조니 에른스트 공화당 의원은 23일(현지시간)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 군대와 장비가 집결하는 것은 일종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미국 대응은 매우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의원은 대응 형태에 대해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 시스템에서의 확실한 퇴출이든 노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에 대한 제재이든, 어떤 형태의 제재여야 한다. 이런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에 방어 능력뿐만 아니라 공격 무기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른스트 의원은 “침공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시점에서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결의도 보여줘야 한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너무 유화정책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푸틴 대통령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른스트 의원은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반발 없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는 동유럽의 다른 국가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며 “새로운 형태의 소비에트 연방이 확장될 때 민주주의는 약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맥콜 의원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줄곧 (적들에게) 미국의 약세가 표출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올가미를 조이는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러 대응 형태를 ‘소극적 억지력’이라고 표현했다.
맥콜 의원은 그러면서 “지금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당장 강력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고, 그 영향은 전 세계적일 것이다. 행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맥콜 의원은 “중요한 것은 ‘억지’를 위한 메시지”라며 “푸틴에게 우리의 진지함을 보여주려면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 루마니아, 불가리아에서 합동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심각하게 여긴다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병력 증강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중국, 이란 등을 언급하며 “이번 사태는 광범위한 글로벌 파급 효과를 낼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인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 외교위 의원은 “억지력 강화를 위한 상원과 대통령의 작업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유럽에서 다시 공격성을 보이고, 우크라이나로 넘어갈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쿤스 의원은 그러면서 “우리는 일부 제재를 적용할 초당적 법안을 채택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에 적용한 것 같은 가장 강력한 종류의 제재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마지막 단계를 밟지 못하도록 억지력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재를 억지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침공 전 제재를 가하면 억지 효과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러시아군이 한 명이라도 우크라이나에 진격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신속하고 가혹한 연합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소규모 침입’ 발언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시점이 푸틴 대통령의 계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러시아는 2008년 올림픽 중 조지아를 침공했다. 무엇이 이익인지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계산에 기반 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비필수 업무를 하는 직원의 출국을 승인한다. 러시아의 지속적인 군사 행동 위협으로 직원 가족들의 출국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중대한 군사행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경,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 반도, 러시아가 통제하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안보 상황은 예측할 수 없으며, 예고 없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