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흔든 바이든 외교력”…우크라 사태 커지는 책임론

입력 2022-01-23 08:47 수정 2022-01-23 09:38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력이 비판에 직면했다. 러시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분열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하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 후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공화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약하게 보고 있어 생긴 일이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글로벌 관여 담당 국장이었던 브렛 브루엔은 22일(현지시간) NBC 뉴스 기고문을 통해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큰 승리를 거뒀다. 우크라이나에 군인 한 명 보낼 필요도 없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지난 19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소규모 침입’(minor incursion) 시 나토 회원국의 대응 분열 가능성을 언급한 뒤 빚어진 혼란상을 두고 한 말이다.

부루엔 전 국장은 “지금은 합치된 나토 대응이 필요한 데,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을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독일이 자국 생산 무기를 키예프로 수출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나토 동맹국인 에스토니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스토니아가 독일산 무기인 122mm D-30 곡사포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겠다고 했는데, 독일이 막았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폴란드 등과 달리 독일 정부는 “군사적 긴장이 있는 지역에는 무기 수출을 지양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며 공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보내는 걸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날 키예프 주재 독일 대사를 초치하고, “독일 정부의 입장에 대해 깊은 실망을 나타냈다. 독일이 러시아의 대규모 침공 위협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의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WSJ는 “모스크바는 독일의 무기 이전 거부를 서방 국가 분열의 신호로 판단할 수 있다”며 “서방 동맹은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법과 러시아 침공 시 부과할 경제적 제재 범위를 놓고 광범위한 긴장이 있었다. 러시아 군사력 증강에 대한 공동 대응을 구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도 “푸틴 대통령은 지금이 공격 타이밍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정치적으로 분열돼 있다. 대통령은 약하고 타협적”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전략적 순간을 위해 잘 준비해 왔다. 러시아의 금융 보유액은 최소 초기 제재 영향을 버틸 만큼 충분히 많고, 에너지 가격도 높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실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으로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고조는 국제사회에서 미국 영향력 상실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이번 갈등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움직임을 매우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다”며 “시진핑 주석은 동계올림픽 이후 대만을 침공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침공에 미국이 무력하게 나오면 또 다른 글로벌 안보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면 미국의 대중국 대응에 대한 집중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CNN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바이든 대통령을 약하게 하고, 서구에 대한 신뢰성과 미국의 글로벌 파워에 대한 인식에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은 이를 이용해 대여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마이클 맥콜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는 전날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정보기관의 비공개 브리핑을 받은 뒤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몇 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며 “미국이 러시아에 더 강경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바이든 대통령을 약한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 내 예측은 다음 달 러시아의 침공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발생한 유가 급등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안고 있는 숙제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배럴 당 80달러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유가 100달러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한편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철수 승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BC뉴스는 “비상 계획은 몇 주 동안 진행돼 왔다. 가족과 비응급 지원은 상업용 항공편으로 출국하는 승인을 준비 중”이라며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폭스뉴스도 대사관 직원들에게 24일부터 대피에 나설 것을 국무부가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