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파업 장기화에…비노조 “노동자 지위 삭제해달라”

입력 2022-01-20 15:29 수정 2022-01-20 16:42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의 파업이 4주 차에 접어든 가운데 비노조 택배기사들이 파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설 연휴 배송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택배노조 파업을 둘러싼 갈등도 고조되는 양상이다.

김슬기 비노조 택배연합회 대표가 비노조원 밴드에 게재한 글이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해당 글에서 “택배노조는 모든 택배기사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운을 뗐다.

김 대표는 “현재 택배노조 가입자는 약 2000여명으로 CJ대한통운 전체 택배기사 2만명 중 10%에 지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노조에 반대하는 비노조 택배연합은 인원을 모집한 지 일주일 만에 2300여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어 “단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3년간 모인 노조 인원 이상의 수가 모인 것은 노조의 의견이 택배기사의 의견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택배기사는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와 계약한 자영업자”라며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업자 대 사업자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노조가 있기 전에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일을 했다”며 “각자의 역량에 맞춰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은 많이 하고 적게 벌고 싶은 사람은 적게 일할 수 있었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택배노조 때문에 택배기사들의 처우가 도리어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택배노조가 생긴 후에 ‘과로사다, 노동력 착취다’라며 일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생기게 됐다. 자영업자로 사는 택배기사의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며 “택배노조가 주장한 것과는 반대로 실제 일선에서는 근무 시간 제한 때문에 기사들의 업무 과중이 누적됐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물량을 줄일 수는 없어 한정된 시간 안에 수백 개의 택배를 배달하려 끼니도 걸러 가며 배달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택배 분류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돈을 더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노조의 주장이 택배기사를 더 힘들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CJ대한통운과 대리점 그리고 기사들 간에는 이미 계약된 금액이 있는데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식당에 가서 이미 명시된 음식값에 손질 비용을 추가로 받겠다는 소리”라며 “정부는 노조의 손을 들어 줬고 CJ대한통운은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 단가를 올렸다. 그 결과 단가 상승으로 인한 거래처 이탈은 발송 기사들의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2020년 초 코로나19 발생 이후 과로사로 스무명 이상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하자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우체국 등 국내 상위 4개 택배사와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택배 분류 작업에 대해 택배사가 책임진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를 근거로 택배요금도 함께 인상했다.

김 대표는 “택배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며 오늘 이후로 택배노동자라는 말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택배기사이지 택배노동자가 아니다. 우리를 택배노동자라는 명칭으로 부르지 말아달라”며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택배기사의 노동자 지위를 삭제해달라.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총파업 규탄 및 파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CJ대한통운택배 대리점연합회도 택배노조의 파업에 반대 의견을 낸 상황이다. 연합회는 지난 19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의 조건 없는 파업 중단과 현장 복귀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택배노조는 택배 물량이 늘어나는 연말과 설 명절 특수기를 이용해 고객의 상품을 볼모로 본인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는 작태를 되풀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수년간 피땀으로 일군 택배 현장을 소수의 택배노조가 망치는 것을 더는 간과할 수 없다”며 “사회적 합의에 대한 왜곡된 주장으로 조합원을 속여가며 명분 없는 파업을 주도한 노조 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해 택배 현장을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J대한통운에 대해서는 집화 제한 조치를 해제하고 서비스 차질 지역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택배노조 CJ대한통운지부는 지난해 12월 28일 사회적 합의에 따른 택배 요금 인상분을 CJ대한통운이 과도하게 차지한다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 요금을 170원 인상했으나 사측이 56원만 합의 이행 비용으로 사용하고 추가 이윤으로 3000억원을 챙긴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택배요금 인상분 분배 개선과 함께 당일배송 및 주6일제 철회, 저상탑차 대책 마련, 분류 도우미 투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4주째 계속되는 파업에는 전체 택배기사 2만명의 8%에 해당하는 1650여명이 참여했다. 파업 여파로 경기 고양시, 성남시, 이천시, 광주시를 비롯해 경남 창원시와 거제시 등 일부 지역에서 배송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