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여군 A하사 성추행 사망사건의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2차 피해로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고(故) 이예람 중사와 비슷한 피해를 겪고 사망한 사건이다. A하사 유족 측은 판결에 불복하며 군 검찰에 항소 요청을 하겠다고 밝혔고, 피고인 역시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의지를 내비쳤다.
공군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김종대 대령)은 18일 군인 등 강제추행,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주거침입,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이모 준위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주거침입, 재물손괴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박모 원사에겐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볼을 잡은 이 피고인의 행위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수치심 일으키기 충분하다”면서도 “다만 성범죄와 관련해 초범임을 고려해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취업제한 명령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재물손괴와 주거침입 등에 대해 피해자를 긴급히 구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라고 주장하나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거침입 등은 ‘거의 평온’이라는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당시 이미 사망한 피해자에겐 범죄 보호할 법익이 없다고 주장하나 피해자 생전에 가진 주거 평온은 사망 후에도 보호돼야 함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이 준위는 지난 3∼4월 부대 상황실에서 두 차례 A하사의 볼을 잡아당기는 등 2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하사 숙소에 찾아가거나 업무와 무관한 문자메시지도 자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준위 역시 군 수사과정에서 이를 직접 진술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11일 A하사가 출근하지 않자 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숙소로 찾아가 방범창을 뜯고 내부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들어가 물건을 만지는 등 현장을 훼손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박 원사는 당시 방범창을 떼어 내 이 준위가 내부로 들어가게 도운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선고 재판 후 A하사 가족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 피고인이 딸의 사망 현장에서 유서로 추정되는 노트를 은폐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으나 재판 과정에선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며 “군 검찰에 항소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 준위는 “그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무죄가 나왔어도 억울하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에 대해 항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A하사 성추행 사망사건은 지난해 11월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공군 여중사 사망사건 발생 당시 공군이 또 다른 성추행 사망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군 당국이 A하사가 숨지고 한 달 뒤 ‘스트레스성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고, 이후 이 준위의 강제추행 혐의가 이미 드러났음에도 은폐했다가 뒤늦게 기소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군사경찰은 A하사 사망 원인을 ‘보직 변경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추정하고, B준위를 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로만 기소했었다. 이후 유족이 재수사를 요청하며 변사사건 수사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에야 공군본부 보통검찰부는 B준위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센터는 특히 A하사 사망이 이예람 중사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공군 상급부대에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국민 관심이 군 성폭력 이슈에서 멀어질 때쯤 사망과 강제추행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 티나지 않도록 별도 기소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은 지난해 3월 2일 선임 부사관인 장 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이 모 중사가 회유와 압박 등 2차 피해를 당한 뒤 같은 해 5월 22일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공군의 조직적인 회유와 은폐 시도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